핏줄을 넘어 사명으로 4대 해병의 길에 서다

입력 2026. 04. 08   15:20
업데이트 2026. 04. 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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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해병대는 단순한 군대가 아니었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까지 이어져 온 이야기는 강인했고 뜨거웠다. 집 한쪽에 걸린 아버지의 해병대 복무 사진은 어린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빨간 명찰과 당당한 눈빛은 ‘멋있다’는 감정을 넘어 언젠가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동경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 우리 집안에 이어져 온 해병대 역사를 더 깊이 알게 됐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병 3기로 6·25전쟁에 참전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 도솔산지구전투 등 전장을 누비셨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순간마다 가장 앞에서 싸워 낸 용기와 헌신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께서도 병 173기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추라이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했고, 아버지는 병 754기로 해병대2사단에 배치돼 김포반도 최전방에서 수도 서울의 서측방을 방어하는 임무를 담당하며 해병대 집안의 전통을 이어 오셨다.

세대를 넘어 계속돼 온 해병대의 길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책임이자 반드시 이어 가야 할 사명이었다.

2025년 상근예비역 통지서를 받았을 때 보다 편한 길이 눈앞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4대 해병’. 망설임 없이 해병대를 선택했다.

신병교육대에서의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규칙적인 생활과 강도 높은 훈련은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있었다. 흐트러졌던 생활은 바로잡혔고, 부족했던 체력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무엇보다 크게 남은 것은 동기들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고된 훈련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하나의 전우가 돼 갔다. 혼자였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순간도 함께였기에 이겨 낼 수 있었다. 그 경험은 큰 자신감이 돼 돌아왔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됐다.

이제 더는 해병을 동경하던 소년이 아니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길 위에 당당히 서 있는 해병이다.

4대 해병이란 이름은 나에게 자랑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다. 선배 해병들이 보여 주신 헌신과 용기를 이어받아 어떤 임무가 주어지더라도 끝까지 완수하는 해병, 동료를 위해 먼저 나설 수 있는 해병으로 성장해 나가겠다. 핏줄로 시작된 길이지만, 그 완성은 내 몫이다. 해병으로서의 사명을 가슴에 새기며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 것이다.

 

김준영 이병 해병대교육훈련단
김준영 이병 해병대교육훈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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