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전방의 산길을 오르다 보면 도저히 생명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당당히 서 있는 소나무들과 마주친다. 흙 한 줌 제대로 없을 것 같은 그 좁고 마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저토록 푸른 생명력을 유지하는지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넘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그 나무들은 마치 최전방을 지키는 우리 장병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통제된 일과, 낯선 이들과의 단체생활, 험준한 환경 속에서 청년들은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자신만의 ‘뿌리’를 내리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부대 적응에 유난히 어려움을 겪던 한 용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상담실에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떨군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겨우 입을 뗀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피로감과 자괴감이 묻어 있었다. 사회에선 남부럽지 않게 활발했고 무엇이든 잘해 내던 청년이었지만, 군대에선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다. 특히 훈련이나 병영생활보다 사회에 있는 또래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견디기 힘들다고 고백했다. 남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는 듯한데, 자신만 제자리에 멈춰 서 헛발질하는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오늘날 많은 청년이 느끼는 보편적인 불안함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성당 주변의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나무가 저토록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건 겉으로 보이는 가지보다 많은 뿌리가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 더 치열하게 뻗어 있어서다.”
우리 삶도 때론 성장이 완전히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군대는 사회의 속도감에 익숙한 청년들에게 ‘정지된 시간’처럼 다가오기 마련이다. 친구들의 SNS에는 화려한 성공담과 즐거운 일상이 가득한데, 자신은 통제된 일과 속에서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것은 결코 멈춘 게 아니다. 오히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가장 깊어지는 시간이다.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청년들에게 ‘인내’라는 이름의 가장 단단한 자양분을 제공한다. 당장 눈에 띄는 화려한 성과나 숫자로 증명되는 결과물은 없더라도 전우들과 같이 임무를 수행하며 험준한 환경을 극복하는 동안 그들의 내면에는 무엇보다 견고한 뿌리가 자라난다.
시간이 흘러 그 용사는 어느덧 후임을 챙기는 듬직한 선임이 됐다. 이제 그의 눈빛에선 예전의 불안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이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조급해하지 않는다. 시련이 닥칠 때마다 자기 내면 깊숙이 내려온 뿌리의 깊이를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종교가 삶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눈앞에 나타나는 화려한 ‘기적’이 아니라 고통의 시간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기다림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종교적 가르침을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 자체가 이미 숭고한 수행의 과정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을 키워 가는 모든 청년의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다. 오히려 그 시간이야말로 훗날 거센 풍파가 몰아칠 때 그들을 쓰러지지 않게 지켜 줄 유일한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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