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진단’
49. 인공지능 시대 북한의 생존전략
전력·데이터 한계
발전량 우리의 5% 수준에 머무르고
통제 속 주민 대화 데이터화 어려워
제도·자본의 한계
열악한 산업 부문 해외자본 투입 필수
소유권 보장 없어 대규모 투자 미지수
인적 자원의 한계
과학기술 엘리트 인력 양성했지만
이념교육 탓 유연한 사고 어려울 듯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대국을 벌인 것이 꼭 10년 전 일이다. 10년간 인공지능(AI) 기술은 그 당시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AI로 변화할 10년 뒤 세상은 어떨까? 역시 예측이 쉽지 않다. 그러나 AI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와 파괴적인 속성을 고려하면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순간 생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만큼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정리=윤병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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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AI 정책과 성과
북한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지난 2월 개최된 9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앞으로 5년간 경제 발전의 기본 방향을 ‘안정 공고화와 점진적 질적 발전’으로 제시했다. 공격적인 생산 목표를 설정해 양적 성장을 추구하기보다 내실을 다져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주목할 것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AI, 신에너지, 우주산업 등 신(新)산업 분야를 미래의 문제가 아닌 현안으로 강조했다는 점이다. 북한 당국도 경제 발전에서 기술혁신의 중요성, AI와 같은 첨단 과학기술 발전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북한이 산업 부문에서 디지털 기술의 적용,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수자경제’를 강조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2000년대 초반부터 ‘수자경제’ 개념을 도입하고, 공업 분야에서 컴퓨터수치제어(CNC) 기술 적용을 적극 추진했다. 2010년대에는 내각 정보산업지도국 산하에 인공지능연구소, 김일성종합대학에 첨단기술센터를 설립하고 AI·빅데이터 등 관련 분야 연구를 하도록 했다. 2021년엔 통신업무를 담당하는 체신성,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전자공업성, 국가정보화국을 통합한 정보산업성을 출범해 정보통신 분야 과학기술 개발에 힘을 실어 줬다.
성과도 있었다. 2020년 2월 공개된 북한의 자체 개발 스마트폰 ‘진달래7’에는 지문·음성·문자 인식, 얼굴 식별 등 AI를 활용한 기능이 탑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최근 38노스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3년 북한 연구자들이 저자로 참여한 AI 관련 논문이 100편 넘게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AI 시대 북한 경제 발전의 한계: 인프라, 제도, 인적 자원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에 기술혁신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기술과 자본 측면의 제약이 크다. AI 분야 기술 발전 경쟁력의 원천은 주로 데이터의 양과 질, 하드웨어, 전력 등에서 나온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북한은 이 모든 측면에서 열악하다.
북한과 같이 통제·감시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인간의 활동과 관련된 데이터 축적이 어렵다. 북한이 대형언어모델(LLM)을 만든다면 다양한 발화의 맥락을 포착해 학습할 수 있을까? 대화가 데이터화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주민들은 입을 다물지 않을까? 경제활동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이주영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2010년대 북한 주민 10명 중 1명만이 신용카드 사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마도 거래 내용이 전자화돼 기록에 남는 것을 꺼리기 때문일 것이다. 전력 문제도 심각하다. 2024년 북한의 발전전력량은 253억 kWh로 추정된다. 남한의 2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2010년에 비해 7%밖에 증가하지 못한 수치다. 수력발전 의존도가 높아 발전량을 크게 늘리기도 쉽지 않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한계는 제도와 자본에 있다. 기술혁신은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사적 소유권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실패 리스크를 지고 자본을 조달해 사업을 벌이는 기업가 정신이 혁신의 원동력이다. 또한 북한과 같이 초기 조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산업 부문의 기술적 발전을 위해선 해외자본 투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혁신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적 소유권의 보장이 없는 한 기업가 정신도, 해외자본 투자도 기대하기 어렵다.
인적 자원 측면에서는 비교적 강점이 있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과학기술 분야 엘리트 인력 양성에 공을 들여 왔다. 실제로 북한 대학생들이 세계해킹대회에서 상위권을 휩쓰는 등 일부 부문에서 최상위 인재의 역량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된다. 일반 주민의 평균 학력도 높은 수준이다. 2017년 유니세프에서 수행한 복합지표조사(MICS)에서 북한의 고등학교 출석률은 94.8%로, 여타 50개 조사대상국 평균인 54.2%에 비해 매우 높았다. 하지만 사회주의와 강성독재를 뒷받침하기 위한 이념교육은 유연한 사고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제약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교육 수준으로 북한의 인적 자본 수준을 과대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AI 시대에는 북한의 인적 자원이 갖는 강점은 퇴색하고 약점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미래에도 인간의 노동은 필요하겠지만 노동 형태는 크게 바뀔 것이다. 직업 자체가 사라지거나 생길 수 있고, 같은 직업이라도 인간이 해야 하는 직무(task)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전환 시대엔 특정 부문에 특화된 지식과 기술보다 범용성 기술, 유동지식을 갖춘 사람이 변화에 적응하기가 유리하다. 국가 차원에 적용하면 AI 시대에는 인적 자원의 유동성이 높은 사회가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과 같이 산업인력이 고정적이고, 부문 간 분절적으로 운영되는 체제는 유연한 구조적 전환이 힘들다. 북한이 자랑하는 정보기술(IT) 인력의 전문기술은 AI가 가져올 변화 앞에서 특별한 강점이 될 수 없다.
AI가 가져올 변화, 시간은 김정은 편이 아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은 협상을 통한 제재 완화를 포기하고 ‘자력갱생’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내부적으로는 사상 통제를 강화하고, 주요 품목의 유통을 국가가 장악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이는 일단 가용한 자원을 동원해 버티다가 시간이 흘러 국제공조 제재가 점차 이완되는 틈을 노려보겠다는 계산에 근거했다. 민심에 따라 정책이 달라지는 민주주의 체제보다 주민 통제가 가능하고, 일관적인 노선을 유지할 수 있는 자신들이 장기전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도 이를 뒷받침했을 것이다. 실제 김정은의 전략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예상치 못했던 지정학적 구도의 변화는 북한에 큰 전략적 이익을 안겨 줬다.
그러나 첨단 기술이 가져올 시대 변화는 북한의 국가 경쟁력을 저하하고,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국·러시아와의 협력도 희망적이지 않다. 이미 AI 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과의 협력은 완전한 ‘디지털 종속화’를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전쟁 중 군사 부문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진행되는 것일 뿐 일반화가 어렵다. 다가오는 AI 시대에 시간은 더 이상 김정은의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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