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를 만나다
최예나가 증명하는 K팝 ‘익숙한 맛’의 무한순환
지난달 발표한 ‘캐치 캐치’
기승전결 뚜렷한 곡 구성
쉬운 포인트 안무로 화제
챌린지 영상 조회 수 2.5억 회
2세대 아이돌 감성 소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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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 따랏 따따~’. 요즘 체감상 가장 화제가 되는 K팝은 최예나의 ‘캐치 캐치’다. 지난달 11일 발매된 5번째 미니앨범 ‘러브 캐처(Love Catcher)’의 타이틀곡으로 차트 순위는 그리 높지 않으나 SNS 모든 채널에서 팔을 위아래로 내젓는 예나와 K팝 아티스트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무대마다 선명한 콘셉트로 중무장한 예나의 목적은 분명하다. “저는 2세대를 보고 자란 세대이고, 제 오빠도 2세대 아이돌 출신이다. 그때의 감성과 요즘 스타일을 섞어 무대에서 마음껏 보여 주고 싶었다.”
여기서 예나가 이야기하는 2세대는 흔히 K팝 팬 사이에서 통용되는 세대론을 바탕으로 한다. 이 시기의 그룹은 티아라, 오렌지캬라멜, 예나의 오빠인 최성민이 속했던 남녀공학과 같은 팀들이다. 실제론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나 이정현의 ‘철수야 사랑해’, 바나나걸의 ‘엉덩이’와 같은 테크토닉에 가까운 ‘캐치 캐치’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챌린지 5000개를 만들어 모두가 춤추기를 원한다는 바람만큼은 중국 플랫폼 도우인에서 챌린지 영상 조회 수 2.5억 회 이상을 기록하며 이뤄졌다.
‘캐치 캐치’처럼 확실한 노선을 취하는 노래가 하나 더 있다. 걸그룹 있지 멤버 유나의 솔로곡 ‘아이스크림’이다. 한터·써클 일간 차트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이 노래를 들을 때 많은 고민은 필요하지 않다. 오직 퍼포머의 매력만을 알리고 부각하기 위한 버블검 팝 장르 위에서 ‘아이스크림의 여신’으로 분한 유나의 무대를 보고 즐기면 된다. 보면 즐거운 아이돌, 매력을 동경하게 만드는 판타지, 원초적 감각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K팝에서 화두로 떠오른 광경이 흥미롭다.
‘아이돌니스(Idol-ness)’의 복원과 관련해 K팝 팬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내가 알던 K팝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K팝은 원래 이 맛이다’와 같은 간증이 쏟아진다. 무대 위에서 반짝이고 보는 이로 하여금 ‘응원할 맛’이 나는 무대, 기승전결이 뚜렷한 곡과 쉬운 포인트 안무로 고민 없이 휴대전화를 켜고 동작을 따라 하게 만드는 곡이 그들이 그리워하는 K팝의 정수다. 오늘날 K팝은 대체 어떻기에, 어떤 맛이기에 ‘아이돌니스’를 향한 갈망이 쏟아지는 걸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K팝은 아이돌다움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뉴잭스윙 비트 위에서 강렬한 랩을 더한 ‘난 알아요’로 데뷔한 순간 트로트와 발라드가 지배하던 기성 가요계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었다. 서태지가 남긴 사회적 메시지는 이들의 포맷을 가다듬어 내놓은 H.O.T.와 젝스키스 등 그룹으로 이어졌다. H.O.T.의 데뷔곡이 만연한 학교폭력을 꼬집은 ‘전사의 후예’였고, 젝스키스는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 시들어 가는 청춘의 절규를 대변하는 ‘학원별곡’이었음을 짚어 보자. 그러나 대중은 메시지 대신 통통 튀는 ‘캔디’와 ‘폼생폼사’에 열광했고, 기획사들은 시장 흐름을 산업으로 만들었다.
‘3대 기획사’로 불렸던 SM, YG, JYP는 방법론은 달랐을지언정 목적지는 같았다. 작사·작곡, 안무 창작, 무대 콘셉트 담당을 나눠 체계적인 공정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반항의 언어가 매력과 즐거움으로 환원되고, K팝은 견고한 산업으로서 검증된 성공 공식을 자본을 통해 생산하게 됐다. 이때 등장했던 프로토타입이 오늘날 우리가 2세대로 부르는 그룹이고, 초기 시장에 출시됐던 독특한 콘셉트와 어지러운 시행착오가 고도화된 현재 K팝 시스템에서 기묘한 매력을 띠기에 해당 그룹의 전성기를 낭만적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은 것이다.
무한한 순환과 복원의 욕망은 이미 ‘아이돌니스’를 탈출하려 했던 K팝 초창기의 복각으로도 작동한 바 있다. 2013년 ‘학교 시리즈’로 출발해 청춘의 성장서사를 결합한 방탄소년단(BTS)의 서사다. BTS가 시장에 주장한 진정성과 세계관은 아이돌 멤버에게 음악적 역량을 증명하라는 시장의 압박과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그룹의 대서사를 창작해야 할 필요성으로 K팝 시장의 문법을 다시 정의했다. 음악은 정교해지고 담론은 두꺼워졌다. 자연히 이에 피로감을 느끼는 대중도 늘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과 쉬운 구조의 곡을 요구하는 ‘이지 리스닝’ 등 나이 든 K팝 산업은 이미 복원적 노스탤지어 신호를 감지하고, 이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내놓고 있었다. 그 향수를 전략적 상품으로 포착한 결과가 ‘캐치 캐치’와 ‘아이스크림’이다.
확실한 응답이 반갑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역사에서 온다. 대중음악의 역사가 그렇다. 반항을 산업화하고, 산업화로부터 피로를 느끼고, 피로한 감정을 과거로부터 위로받는다. K팝도 마찬가지다. 초창기 산업의 그리움을 ‘좋았던 시절’이라고 포장해 다시 내놓는 결과물이 새로운 것으로 주목받는 흐름이 보인다. 그 가운데 확고한 목표, 이를테면 예나가 타깃으로 삼는 서브컬처 팬들이나 유나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아이돌의 매력을 충실히 구현하는 작품이 화제를 모은다.
K팝이 원래 이 맛이라는 따뜻한 간증에 조금 차가운 이야기를 하자면 K팝의 원래 맛이란 건 없다. 본질도 없다. 과거를 되살려 현재의 피로를 덮으려는 노스탤지어의 순환뿐이다. 최소한 숨듣명 시절에는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와 노골적인 욕망 혹은 엉뚱한 상상이라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하이퍼팝을 위시한 전 세계 젊은 음악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라도 했다. ‘따 따랏 따따’는 그 우연한 기묘함까지 복원하지 못한다.
굳이 정의하면 오늘날 우리가 K팝에서 음악적으로 기대하는 일말의 가능성은 거대한 기계적 생산 시스템 그 자체로부터 빚어지는 파괴적인 재해석과 상상하지 못했던 우연의 모순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복뿐이다. 10년 후 어딘가의 연습실에서 ‘캐치 캐치’를 복원하고자 노력하는 아이돌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익숙지 않다고 느끼는 K팝의 문법도 훗날에는 진취적인 시도로 기억될지 모른다. 아마 하는 말도 비슷할 거다. “그때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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