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이 남긴 것

입력 2026. 04. 02   14:56
업데이트 2026. 04. 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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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은 백남준의 사후 20주기가 되는 해다. 왁자지껄했던 10주기와 달리 그를 기리는 행사가 드물다. 그래서인지 호반아트리움의 백남준 타계 20주기 특별전이 각별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은 전문가가 먼저 알아본 뒤 대중에게 서서히 이름을 알리는 법인데, 백남준은 1984년 1월 1일 세계 최초의 위성 퍼포먼스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한국의 예술 전문가와 대중에게 동시에 이름을 알렸다. 이 위성 퍼포먼스가 방송되기 전까지 전문가 대부분이 백남준의 정체를 잘 몰랐다. 몰랐던 만큼 문화적 충격 또한 컸다. 전문가들은 의심했고, 대중은 열광했다.

우리에겐 후진국 콤플렉스가 있었다. 세계를 호령하며 지구촌 문화계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백남준 같은 위대한 한국인의 등장에 대중은 흥분하며 환호했다. 백남준이란 거인이 한국 현대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 한국 국민의 예술에 대한 인식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을 떠올리니 타계 20주기 풍경이 더욱 허전하고 쓸쓸하다.

미술작품에는 이중의 가치가 있다. 하나는 정신적 가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품으로서 가치다. 상품으로서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미술작품이 원래 가졌던 정신적 가치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한국이 경제대국이 되면서 대중은 작품 가격에 민감해졌다. 작품 가격이 높은 작가가 무조건 더 나은 대접을 받게 됐다.

해마다 세계 미술가들의 작품 가격을 매겨 왔던 독일의 ‘카피탈’지는 1996년 1월호에 백남준을 7위로 등재했다. 동갑내기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함께 최상위권 성적이었다. 지난 30년간 리히터의 작품 가격은 몇십 배 이상 상승해 어떤 작품은 최근 시가 500억 원을 넘겼다. 그동안 백남준의 작품 가격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미술시장에서 백남준은 뒷전으로 밀려난 작가처럼 보인다. 대중은 미술작품의 정신성보다 미술시장이 매기는 상품성에 관심이 더 많다. 한국의 대중과 전문가에게 동시에 알려졌던 백남준은 이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 보인다.

백남준의 작품 안에는 여러 제품과 부품이 들어간다. 백남준 10주기 때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 있는 ‘다다익선’의 모니터 교체를 놓고 1988년 제작 당시의 CRT 모니터로 할 것인지, 신제품인 LED 모니터로 할 것인지 논쟁이 치열했다. 얼리 어답터 백남준이 채택했던 테크놀로지와 그 물질적 세계는 시간이 흐르자 어느덧 낡고 뒤처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백남준이 우리에게 남겨 놓은 건 비디오아트라는 낡은 미술작품만이 아니다. 진실로 그가 남긴 건 미술작품을 뛰어넘어 살아남은 그의 정신이다. 백남준은 도전정신의 상징이었다. 1959년에는 스승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를 서구 고전의 상징인 피아노를 도끼로 박살 내는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서른 살이 됐을 때 서구 문화계에 도전하는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뜻으로 자신을 ‘황색 재앙’이라고 선포했다.

1974년 백남준은 록펠러재단에 제출한 영문 보고서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 21세기까지는 고작 26년밖에 남지 않았다’에서 ‘전자초고속도로’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의한 미래의 탈산업사회를 예견했다.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인터넷 시대를 앞당겼다. 작품비를 받으면 은행 빚을 더해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하느라 작품이 팔리면 팔릴수록 빚이 더 늘어났던 백남준이었다. 무모하지만 우리가 새겨야 할 도전정신이었다.

황인 미술평론가
황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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