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립운동가 파리장서운동 주도 이명균·장석영·유진태 선생

입력 2026. 03. 31   16:10
업데이트 2026. 03. 31   16:57
0 댓글

국가보훈부(보훈부)는 일제강점기 당시 한일병합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한 이명균·장석영·유진태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를 계기로 한국 유림들이 국제사회에 독립을 청원하고자 전개한 외교적 독립운동이다.

2·8 독립선언과 3·1 운동으로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유림세력 또한 독립청원운동을 추진했다. 이들은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문의 독립청원서, 즉 ‘파리장서’를 작성하고 전국 유림 대표 137명의 서명을 받아 국제사회에 발송했다. 그들은 한일병합의 강제성과 부당성을 비판하고, 한국 민족이 독립국으로서 존속할 정당한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명균(1863~1923) 선생은 경북 지역 유림으로 광흥학교 설립 후원과 조선총독 암살 시도 등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펼쳤고, 3·1 운동 이후에는 장서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조선독립후원의용단에서 활동하면서 자기 재산을 처분해 독립자금으로 내놓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제에 체포돼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장석영(1851~1926) 선생은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3·1 운동 소식을 접한 뒤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을 제출하자는 제안에 호응해 장서를 집필했다. 그의 초안은 일본의 침략을 강하게 규탄하는 내용으로 장서운동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다. 이런 이유로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지만, 출옥 후에도 항일운동을 이어 나갔다.

유진태(1872~1942) 선생은 조직과 연계를 담당한 실무적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평안도 지역 서명자를 규합하는 책임을 맡아 활동하면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추진되던 장서운동을 연결해 통합을 추진했다. 해외 독립운동가와도 연계해 문서 전달을 지원하고, 계몽운동을 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 갔다.

3·1 운동이 국내외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독립의지를 표출한 사건이라면 파리장서운동은 이를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호소한 시도였다. 또한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제국주의 지배의 부당성을 국제여론에 호소했다는 점에서 보편적 가치 실현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노성수 기자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사진=국가보훈부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사진=국가보훈부

 

파리장서. 사진=국립한국문학관
파리장서. 사진=국립한국문학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