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K세대

입력 2026. 03. 31   15:50
업데이트 2026. 03. 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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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입에 오르내렸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도 요즘은 꺼내기 어려운 지경인 것 같다. 불과 몇 년 새 코로나19와 미·중 전략경쟁, 지구촌 곳곳의 전쟁에다 인공지능(AI) 출현까지 겹치며 미래는 어느 때보다 불투명해졌다.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해 글로벌 정세의 직격탄을 맞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우울감은 말할 것도 없다. 성장통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겠지만, 너무 아픈 청춘도 청춘이 아니다. 

기성세대로서 위로의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잠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긴 심호흡으로 시야를 넓히기를 권한다. 아마 지금의 불운과 고난도 그리 대단한 건 아니며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힘찬 응원의 박수를 꼭 들려주고 싶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필자의 조부모세대는 여러모로 인생 자체가 불행했다. 태어나 보니 일제 식민지였고, 광복 후에는 전쟁과 분단의 격변에 휩쓸려 청춘의 봄을 누릴 새도 없었다. 목숨을 연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이다.

더 비참했던 시기도 있다. 국사학자들이 빼놓지 않는 게 경신대기근이다. 조선 현종 때인 1670~1671년 흉작과 전염병으로 인구의 약 10%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모가 아이를 버리고 심지어 식인(食人) 사례까지 보고되는 등 형언하기 힘든 지옥도가 펼쳐졌다.

불행은 시공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중동 등 곳곳에서 일상의 삶과 기본적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다. 가까이 있는 북한 인민들은 또 어떠한가. 우리와 불과 수십 ㎞ 떨어진 곳에 살고 있음에도 장기 독재와 기아선상에서 신음하며 자유와 행복을 꿈꿀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위만 바라보고 살 수 없고 때로는 나보다 못한 존재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과거 다른 시대가 아닌 지금, 다른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금 기성세대는 후진국에서 태어났지만 살아생전 선진국 국민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

미래세대는 부모들만큼 고성장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에 좌절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세대도 나름 자신의 짐을 감당하며 여기까지 왔다. 모든 게 넉넉지 않고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밝은 미래가 서광처럼 비춘 것도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당시로선 언감생심이었고, 오히려 전망은 암울함에 가까웠다. 그 시절 청춘에게 지금 한국의 청년은 선망의 대상일 것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서울 광화문 콘서트 ‘아리랑’이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TV 화면에 비친 해외 ‘아미’(팬)들의 한국어 인터뷰였다. 기자들이 한국어 능력자를 주로 섭외했을 수 있겠지만 과거에는 꿈같은 일이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거짓말 같은 꿈이 이뤄졌다. 기성세대는 자식세대가 ‘K브랜드’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당당한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되길 고대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입시 지옥과 취업난 등으로 당장의 현실은 ‘헬조선’이라고 할 수 있다. ‘삼포세대’에 이어 ‘N포세대’란 말까지 나온 지 오래이지만 사정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발전해 왔고, K세대는 그 주역이 될 충분한 자질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만난(萬難)을 헤쳐 온 우리 선조들과, 그리하여 광화문에서 꽃피운 방탄소년단이 그 증표다.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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