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서해수호의 날] 바다가 낳은 별들 별들이 지킨 바다 기억의 물결은 영원합니다

입력 2026. 03. 26   17:22
업데이트 2026. 03. 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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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3월 26일은 돌아왔다. 46명의 영웅이 잠든 바다는 잔잔했지만, 유가족에게는 여전히 멈춰버린 시간이고 전우들에게는 끝내 놓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 천안함 46용사 추모비 앞. 시간이 흐르면서 켜켜이 쌓여온 그리움이 추모식 공간을 채웠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애도가 이어졌고, 가라앉지 않은 슬픔은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글=박성준/사진=한재호 기자

 

26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에서 제16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엄수되고 있다.
26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에서 제16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엄수되고 있다.


영웅을 기억합니다
해군2함대 16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짙게 내려앉은 안개는 추모식장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했다. 유가족들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말없이 추모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천안함 피격사건 경과보고가 시작되자 곳곳에서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유가족들은 눈을 질끈 감거나 고개를 깊이 떨군 채 그날의 순간을 다시 견뎌내고 있었다. 차마 바라볼 수 없는 기억 앞에서 누구도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 아 늠름하고 용맹스럽고 꽃다운 젊음들이 검은 바다에 산화하며 호국의 별이 되어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추모시 ‘바다는 별을 낳고, 별은 바다를 지킨다’가 낭독되자 곳곳에서 참아왔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유가족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깊이 눌러 담아왔던 슬픔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듯 흘러내렸다. 식장에는 어느새 숨죽인 울음이 겹겹이 쌓이며 말보다 더 깊은 애도를 전하고 있었다.

 

 

이두희 국방부 차관이 분향하고 있다.
이두희 국방부 차관이 분향하고 있다.

 

유가족이 동판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유가족이 동판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헌화와 분향을 위해 추모비 앞으로 나선 유가족들의 발걸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얼굴이 새겨진 동판 앞에 다다른 이들은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들은 말없이 동판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울음소리를 억지로 몸 안으로 밀어 넣으며 가까스로 꽃을 놓았다. 꽃 한 송이를 놓기까지 걸린 시간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16년의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한 유가족은 동판 앞에 쓰러져 울었다.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연신 닦아냈다. 마치 차가운 금속 너머로 온기를 느끼려는 듯한 손길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몇몇은 고개를 돌린 채 눈시울을 훔쳤다.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서야 그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추모곡 ‘바다의 별이 되어’가 울려 퍼지자, 간신히 가라앉혔던 감정은 다시 흔들렸다. 잔잔하게 흐르는 선율 위로 울음은 다시 번졌고, 고개를 떨군 채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유가족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추모의 자리가 아니었다. 매년 이곳에 모여 떠나보내지 못한 이름들을 다시 부르고 붙잡지 못한 시간을 다시 마주하는 자리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해졌고 그리움은 덜어지지 않은 채 켜켜이 쌓여갔다.

천안함 피격사건 16주기를 맞아 이재섭(소장) 2함대사령관 주관으로 진행된 추모식에는 천안함 46용사 유가족과 참전 장병,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 및 국회의원, 이두희 국방부 차관, 천안함재단, 2함대 지휘관 및 참모, 국가보훈부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식 이후 유가족들과 참전 장병들은 천안함 전시 시설과 신형 호위함 천안함(FFG, 3100톤급)을 둘러보며 서해를 수호한 영웅들의 호국정신을 되새겼다.

김경률 해군참모총장은 조전을 통해 “천안함 46용사의 사명감과 헌신은 우리 해군·해병대 장병들의 임무수행 의지에 선명히 깃들어 있다”며 “해군·해병대는 그들의 희생 위에 오늘날 우리 바다의 평화가 있다는 것을 영원히 잊지 않고,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해양안보를 굳건히 수호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제16주기 고(故) 한주호 준위 추모식에서 해군특수전전단 역대 지휘관들이 묵념하고 있다.
제16주기 고(故) 한주호 준위 추모식에서 해군특수전전단 역대 지휘관들이 묵념하고 있다.


해군특수전전단 16주기 고 한주호 준위 추모식

해군특수전전단(특전단)은 이날 경남 창원시 진해루해변공원 한주호 동상 앞에서 제16주기 고(故) 한주호 준위 추모식을 거행했다. 특수전전단장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교육사령관, 특수전전단 역대 지휘관과 주요 지위관 및 참모, UDT 전우회 대표, 경남·진해보훈단체, 경남동부보훈지청장 등이 참석했다.

박순식(준장) 특전단장은 “한 준위가 남긴 용기와 헌신은 특수전뿐만 아니라, 해군·해병대 장병들 가슴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군인정신을 계승해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특수·구조작전 분야 교육훈련과 전투력 향상에 기여가 큰 부대원에게 주어지는 ‘한주호상’ 시상식에서는 해군특수전전단 윤양권 상사와 해병대 수색교육대 반치식 원사가 수상했다. 조수연 기자/사진=부대 제공


사명을 이어갑니다 
영해수호 의지 다지는 장병들 

해군2함대에는 육상 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와도 함정에 남아 끝까지 서해를 지키겠다는 ‘함정 계속근무 서약’을 한 장병들이 유독 많다. 전우들이 피로 지켜낸 바다를 내 손으로 끝까지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2함대만의 숭고한 내력이자 자부심이다. 서해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베테랑 박용수(원사) 주임원사와 헌신의 길을 묵묵히 뒤따르는 윤현서 상병에게서 함대 장병들이 느끼는 사명의 무게를 확인했다. 조수연 기자/사진=부대 제공

 


끝까지, 군화 끈 조여 맵니다
2해상전투단 박용수 주임원사

내년 전역을 앞둔 박 원사에게 2함대는 단순한 복무지가 아닌, 그의 생(生)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터전이다. 33년의 군 생활 중 무려 24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특히 함대의 자부심이자 기함인 을지문덕함에서 중사 시절 초임 근무를 시작해 상사 진급과 군사특기장 임무를 거쳐, 주임원사로서 다시 승조하기까지 총 9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런 그에게 2함대와 을지문덕함은 집보다도 편안한, 영광스러운 청춘의 상징이다. 하지만 훈장처럼 빛나는 박 원사의 경력 이면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날 선 긴장감으로 견뎌야 했던 서해의 비극들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는 제1·2차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등 굵직한 상흔들을 늘 현장에서, 혹은 현장을 지원하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산증인이다. 제1연평해전 당시에는 수리창에서 빗발치는 포화에 만신창이가 돼 돌아온 참수리 고속정의 파손 부위를 직접 확인하며 긴급 수리를 지원했다. 제2연평해전 전날엔 잊지 못할 전우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출정식 후 제천함에서 함께 근무했던 참수리 357호정 정장 윤영하 소령과 악수을 나누며 ‘수고하십시오’라는 인사를 하고 다음 날 임무차 출항했었습니다. 당일 전투가 발생했고 저희도 전투배치를 하고 현장을 지원했죠. 윤 소령과 마지막 악수할 때의 느낌과 ‘임무 완수 후 입항하면 한잔해요’라는 말이 지금도 생생한데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게 돼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가슴에 묻은 전우는 그뿐만이 아니다. 천안함 피격 당일, 그의 집에서는 고(故) 김태석 원사의 가족들이 박 원사의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평화롭던 식탁은 상황 발생을 알리는 전화 한 통에 산산조각 났다.

“천안함 피격 당일 김태석 원사의 가족들은 저희 가족과 저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발생한 후 전화로 연락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직별 후배이자 천안함 음탐 군사특기장이던 고(故) 김경수 상사를 운구했던 당시 상황이 아직까지 또렷합니다.”

뼈저린 상실감 속에서도 해군은 전진했다.

시간이 흘러, 박 원사는 이제 선배들 몫까지 대신해 바다를 지키는 새로운 세대를 마주하고 있다.

“저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많은 추억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떠날 것이고, 만약 저를 기억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최선을 다한 군인으로, 조금이라도 좋은 기억을 남기고 간 선배로 남았으면 합니다.”

 

 


오늘도, 거친 파도 헤쳐갑니다
서울함 대표수병 윤현서 상병

육상 근무나 비교적 편안한 보직을 선택할 수 있는 군종병임에도 불구하고 파도가 요동치는 함정에 남기를 택한 수병이 있다. 해군2함대 3100톤급 호위함(FFG-II) 서울함의 대표수병 윤현서 상병이다.

가족과 친구들은 편한 길을 두고 속칭 ‘앵카(Anchor·함정을 고정하는 닻처럼 한 함정에서 계속 복무하다 전역하는 것)’라고 부르는 ‘함정 계속근무’를 선택한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윤 상병의 소신은 굳건했다. 무엇보다 서해를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의 고향을 지키는 일이라는 확고한 사명감이 그를 배 위로 이끌었다.

“북방한계선(NLL) 수호는 우리나라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NLL을 지키지 못하면, 다음은 우리의 수도인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2함대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영해의 최전선을 지키는 것이자, 서울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2함대에서 근무하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윤 상병은 함정의 궂은일을 도맡는 갑판병 임무와 전우들의 마음을 보듬는 군종병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칠흑 같은 서해 최전방에서 항해할 때면 육지의 가족과 연락조차 닿지 않는 단절감에 부딪히고, 수시로 울려 퍼지는 전투배치(T/W) 훈련의 사이렌 소리에 이곳이 실전의 바다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해군의 꽃’이라 불리는 갑판병으로서 서해 수호의 최전선에 서고 싶었다는 그는, 밤하늘의 별빛과 동료들에게서 함정 근무의 가장 큰 원동력을 찾았다. 고립되고 긴장된 환경은 역설적으로 부대원들을 더 끈끈하게 묶었다.

2함대 장병들은 힘든 일과 속에서도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미소 짓고, 적응을 어려워하는 동료를 묵묵히 챙긴다. 윤 상병 역시 출동 기간 중 종교활동을 통해 전우들에게 작은 위로의 시간을 선사하고 , 대표수병으로서 함장·부장과 수병들의 징검다리가 돼 흔들림 없는 팀워크를 다지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아무래도 서해 최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긴장감과 피로도가 심한 편입니다. 그러나 ‘고생이 많다’며 서로를 격려해주는 동료 전우들의 모습, 그리고 선배 전우들이 목숨 바쳐 싸웠던 서해 최전방을 현재 제가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매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긍지를 느낍니다. ‘서해수호’란 지금 제게 맡겨져 있는 가장 막중한 임무이며, ‘함정’은 현재 제가 가장 사랑하는 저의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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