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서 멈춘 시선, 더 깊어진 애국심

입력 2026. 03. 26   14:49
업데이트 2026. 03. 2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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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의식행사 순서 중 가장 경건한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일 것이다. 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고개를 숙이는 그 짧은 1분여의 시간, 장병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누군가는 전장의 포성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이름 모를 선배 전우의 헌신을 기릴 것이다. 나에게 묵념은 10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유가족의 눈물을 마주하는 ‘응답’의 시간이다.

묵념의 의미가 남달라진 것은 10년 전 후보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6월 6일 현충일에 동기들과 함께 찾았던 국립대전현충원 46묘역. 그곳에는 2010년 서해의 차가운 바다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천안함 46용사가 잠들어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묘역에 들어선 후 시선이 한 묘비 앞에 멈췄다.

그곳엔 한 부부가 아들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정성스레 차려 놓고 나란히 앉아 계셨다. 어머니는 묘비를 쓰다듬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무심결에 들려온 그 평범하고도 다정한 안부인사가 오히려 슬프게 느껴졌다. 제복 입은 우리 일행을 발견하신 어머니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어깨를 들썩이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그런 어머니를 품에 안아 다독였지만, 아버님의 등 역시 깊은 슬픔을 견뎌 내느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봤다. ‘호국영령’이라는 숭고한 이름 뒤에 가려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과 ‘남겨진 가족의 찢어지는 아픔’을 말이다. 국가를 위해 바친 목숨은 우리에게는 위대한 역사이지만, 부모님에겐 평생 가슴에 묻어야 할 사무치는 그리움이었다. 그분들이 지켜 낸 이 나라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부모님들에게는 아들의 생명과 바꾼 귀하고도 아픈 조국이다. 그날 차가운 묘비 앞에서 맹세했다.

이분들의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이 나라를 반드시 수호하겠다고. 우리가 입고 있는 군복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서 있는 이 땅이 얼마나 많은 이의 희생과 눈물 위에 세워진 것인지를 되새긴다. 묵념은 죽은 이를 추모하는 정지된 시간을 넘어 살아 있는 나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결의를 다지는 숭고한 시간이다.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서해의 거친 파도를 잠재우며 산화한 영웅들의 투혼은 우리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기억은 흐려질지 몰라도 그들이 남긴 헌신의 가치만큼은 퇴색돼선 안 된다.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올리는 장병들이 단순히 고개를 숙이는 것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잠시 눈을 감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평화가 누군가가 간절히 바랐던 내일이었음을, 우리가 수호하는 이 땅이 수많은 부모님의 눈물로 일궈 낸 소중한 터전임을 기억하자. 영웅들의 헌신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사는 군인의 사명이다.

문한솔 대위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전문대항군연대
문한솔 대위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전문대항군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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