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다섯에도 생생한 군번 일곱 자리 73년 전 혁혁한 무공 ‘훈장’을 되찾다

입력 2026. 03. 24   16:29
업데이트 2026. 03. 2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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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대장으로 인제지구전투서 공적 
육군인사사, 이완옥 옹에 전수식

 

육군인사사령부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이 24일 개최한 이완옥 옹 화랑무공훈장 전수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부대 제공
육군인사사령부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이 24일 개최한 이완옥 옹 화랑무공훈장 전수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부대 제공



6·25전쟁 당시 강원도 인제지구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선배 전우가 뒤늦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육군인사사령부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은 24일 전남의 한 요양원에서 이완옥 옹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전수했다. 김홍빈(대령) 조사단장이 주관한 전수식에는 이옹의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과 영암군, 31보병사단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날 전수식은 정전협정 체결 직전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호국 영웅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남 완도 출생인 이옹은 6·25전쟁이 한창인 1952년 1월 18일 제주도 1훈련소로 입대했다. 1952년 7월에는 최전방인 국군12사단 52연대로 배치됐고, 1953년 3월 이등중사로 진급해 분대장이 됐다.

인제지구전투에서 용맹분투한 공적이 인정돼 1954년 4월 20일 무성화랑무공훈장 서훈이 결정됐으나 당시 혼란한 상황 속에서 실제 훈장은 받지 못했다.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의 ‘6·25전쟁사’에 따르면 1953년 6월부터 7월까지 강원 인제 북방에서는 12사단과 북한군 간 치열한 고지전이 전개됐다.

이옹의 전공은 병적자료와 훈장 서훈 기록을 통해 명확히 확인된다. 이옹은 1953년 4월 15일부터 7월 27일까지 분대장으로서 인제지구전투에 참전해 전과를 올렸다. 이는 당시 52연대가 인제 북방 854·812고지 일대를 고수하기 위해 격전을 벌인 상황을 담은 ‘6·25전쟁사’ 11권에 기록된 내용과 맞닿아 있다.

현재 요양원에서 생활 중인 이옹은 95세의 고령임에도 자신의 일곱 자리 군번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이 군번은 70여 년 전 전장에서의 신분 증명인 동시에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공적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이옹의 장남은 “어렸을 때 부친으로부터 전투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하루 종일 방아쇠를 당기다 보니 총열이 너무 뜨거워져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다고 말씀하곤 하셨다”고 전했다.

육군인사사령부는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을 통해 아직 훈장을 받지 못한 2만2000여 명의 숨은 영웅들을 찾고 있다. 조사단은 “선배 전우들이 보여준 위국헌신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군인정신의 근간”이라며 “마지막 한 분까지 찾아 명예를 고양하고 그 희생에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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