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칠수록 멋이 난다... 생존·신분 과시 넘어 개인 취향 수단으로 

입력 2026. 03. 23   16:15
업데이트 2026. 03. 2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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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예술
레이어링의 역사

생존수단에서 신분 가르는 방식 진화
남성은 통치 여성은 예법 품은 복식
1840년대 실용적으로 공장 규격화
디올 ‘뉴 룩’ 전후 레이어링 새출발 선언
유명 브랜드 스타일링 주요 전략 활용

2026 FW 프라다 컬렉션에서 안팎을 바꾼 듯한 독특한 레이어링을 한 모델이 워킹하고 있다. 프라다 제공
2026 FW 프라다 컬렉션에서 안팎을 바꾼 듯한 독특한 레이어링을 한 모델이 워킹하고 있다. 프라다 제공


패션에서 ‘레이어링(layering)’은 단순한 ‘겹쳐 입기’가 아니라 구조·비율·텍스처·색채를 설계하는 스타일링 기법이다. 즉, 기능성과 시각적 깊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접근법인 셈이다. 가죽과 비단, 마포와 모직이 몸 위에서 생존 이상의 일정한 규율과 목적을 갖고 포개질 때 옷은 단순히 체온과 피부를 보호하는 정도를 넘어 신분을 가르고 보디 라인과 움직임을 조절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문자도 국가도 없던 시절, 인간은 추위와 궂은 날씨에도 이동과 사냥을 위해 옷을 겹쳐 입었다. 이때 레이어링은 생존 수단이었다. 몸을 덮고 일하기 쉽도록 가죽·모피, 풀 등을 묶어 겹겹이 쌓아 입었다. 기원전 약 1만 년 무렵 중양(中洋·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농경 정착이 시작되자 가죽 위주 착장은 천과 직물 중심 착장으로 옮아 갔다.

기원전 4000년 말경 수메르 문명이 발흥했고, 이어 기원전 약 3000년 무렵 서양에서 크레타 문명이, 기원전 1600년 무렵 동양에서 상(商)나라가 등장했다. 각 문명권의 대표적인 고대 문명들이 인류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도시와 문자, 왕권, 조세, 전쟁, 장거리 교역이 얽히자 복식도 사회적 질서 한복판에 들어섰다.

동양에선 비단과 포류(布類)가 신분 차이를 드러냈고, 이집트인은 아마(亞麻·리넨) 옷감을 즐겨 썼다. 그리스인은 천을 반으로 접어 어깨를 고정한 뒤 허리띠를 매거나, 별도의 고정핀 없이 천 중간에 구멍을 내어 머리를 넣어 입은 뒤 허리띠로 묶어 마무리 짓는 키톤(chiton) 위에 히마티온(himation)을 둘렀다. 로마에서 남성은 튜니카 위에 토가를 걸쳤고, 여성은 스톨라와 겉천으로 지위를 보였다. 중앙아시아에서도 아마와 양모, 숄과 망토, 긴 로브가 의례와 권위를 드러냈다. 세계적으로 남성의 레이어링은 통치와 군사 질서를, 여성의 레이어링은 신분과 예법, 장식 밀도를 더 선명하게 품었다.

서기 220년 후한(後漢)이 무너지고, 476년 서로마가 멸망했다. 중앙아시아 사산 왕조도 651년에 막을 내렸다. 고전 제국이 해체된 뒤에는 새로운 질서가 농지, 가문, 신앙 등 규범 위에서 재편됐다. 중세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신분을 지키고, 경건을 드러내고, 계절을 견디려 층을 나눠 입었다. 이 무렵 동양에선 새로운 형태의 국가가 등장했지만 복식과 레이어링의 큰 형식은 고대 계승에서 그쳤다. 서양에선 셔츠, 튜닉, 코트, 망토, 호즈, 여성용 언더드레스와 오버가운이 위계를 이뤘다. 중앙아시아에선 티라즈(tiraz·통치자 이름이나 축복 문구를 짜 넣은 직물 띠), 가미스(qamis·길게 내려오는 속옷형 윗옷), 카프탄(caftan·앞이 트인 긴 겉옷)을 입어 지배자의 권력을 드러냈다. 중세 레이어링의 핵심은 ‘권력’이었다.

15세기 말 서양은 대서양 항로를 열었다. 1501년엔 사파비 왕조와 16세기 오스만 제국도 궁정과 도시 상권을 키웠다. 16세기 말 동양은 전란 속에서 국가 재편과 시장 확대를 함께 겪었다. 근세에 이르러 화약은 군대를 바꿨고, 인쇄는 정보를 더 빨리 많이 퍼뜨렸으며, 상업은 팽창했다. 서양 궁정 남성은 더블릿(doublet·몸에 밀착하는 짧은 상의) 위에 저킨(jerkin·소매가 없거나 짧은 소매를 단 겉조끼), 또 그 위에 웨이스트코트(waistcoat·긴 조끼), 코트를 더해 위엄을 세웠다. 여성은 페티코트(petticoat·치마 아래 받쳐 입는 속치마), 스토머커(stomacher·드레스 앞판을 채우는 장식판) 위에 치마를 겹쳐 입어 폭 넓은 실루엣과 장식을 부각했다.

동양에선 명나라 말기 양쯔강 이남의 비단 시장과 도시 소비문화가 커지며 남성은 안에 중단(中單·속에 받쳐 입는 윗옷)이나 적삼류를 입고, 바깥에 포(袍)와 비갑(比甲·소매가 없거나 짧은 덧옷)을 덧입었다. 여성은 치마와 짧은 저고리 위에 배자(褙子·앞이 트인 긴 겉옷)를 걸쳤다. 청나라 초에는 만주 스타일이 중원에 유입됐다. 남성은 창파오(長袍·발목 가까이 내려오는 긴 포)와 마괘(짧은 겉저고리)를 겹쳤고, 여성도 긴 포와 조끼류를 함께 썼다. 후기 조선은 속적삼, 저고리, 치마나 바지, 배자, 두루마기 등 순으로 레이어링했다. 양반 남성은 창의(겉에 걸치는 넉넉한 포)나 도포(소매가 넓은 긴 겉옷)로 격을 세웠고, 여성은 저고리와 치마 위에 장옷(바깥에서 머리와 몸을 가리는 겉옷)이나 쓰개치마를 더했다. 에도 시기 일본의 남성 무사는 가미시모(어깨를 넓게 세운 예복용 겉차림)로 신분을 드러냈고, 여성은 기모노 위에 겹깃과 허리띠를 더해 계절감과 집안 격식을 보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동양 레이어링은 단순한 보온을 넘어 신분·예법·공간 구분을 세밀하게 나누는 장치로 굳었다. 중앙아시아에선 셔츠, 바지, 짧은 상의, 카프탄이 자주 보였고, 레이어링은 이때부터 신분 과시를 넘어 빠르게 바뀌는 유행 체계로 변모해 갔다.

1840년대에 이르러 서구 곳곳에 기계식 공장이 들어서자 레이어링도 공장의 규격화된 질서로 옮겨갔다. 남성은 셔츠, 조끼, 재킷, 오버코트를 레이어링했다. 이 조합은 일상생활 속에서 실용적이었다. 셔츠는 피부와 맞닿는 층이었고, 조끼와 재킷은 몸통을 감쌌으며, 오버코트는 비와 매연을 막았다. 여성은 코르셋, 페티코트, 크리놀린(치마 폭을 크게 벌리는 틀), 버슬(엉덩이 뒤를 부풀리는 받침)로 실루엣을 세웠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 트렌드를 수용했다. 메이지 일본 군복과 양복, 오스만 술탄 마흐무트 2세가 밀어붙인 페즈와 프록코트(무릎 길이까지 내려오는 격식용 코트), 바지를 기존 포와 장삼 사이에 넣어 입었고, 그 위에 토머스 버버리가 개발한 트렌치코트를 덧입기도 했다. 이렇듯 근대 레이어링은 개인 취향보다는 산업 체계와 국가 규정이 더 중요했다.

1947년 2월 12일, 크리스챤 디올의 뉴 룩(New Look)은 잘록한 재킷과 풍성한 치마가 전후 레이어링의 새출발을 선언했다. 미국에선 스포츠웨어와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섬유가 퍼지며 셔츠, 니트, 카디건, 코트 조합이 일상복으로 굳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엔 메리 퀀트,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청년문화와 펑크 감각을 주도했다. 1980년대엔 조르조 아르마니가 부드러운 재킷을, 이세이 미야케,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가 비대칭, 검은 겹, 넓은 실루엣으로 새로운 복식 구조를 세웠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진 프라다, 헬무트랭 유니클로, 아크테릭스, 사카이, 몽클레르가 미니멀리즘, 스트리트웨어, 아웃도어를 한데 묶었다. 이때 하이패션과 일상복 사이 벽도 크게 낮아졌다. 2026년 3월 현재 미우미우, 프라다, 더 노스페이스는 셔츠, 베스트, 후디, 코트, 기능성 셸을 한 착장 안에서 교차시키며 레이어링을 중요한 브랜드 전략으로 삼고 있다.

레이어링은 과거 생존과 위계 구분의 수단에서 출발해 오늘날에는 개인의 취향과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표현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흐름은 사람들이 레이어링을 더욱 선호하게 만든다. 이제 레이어링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스타일링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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