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서…소년의 마음은 점을 찍었다

입력 2026. 03. 19   16:02
업데이트 2026. 03. 1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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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곁에, 예술
영화 속 미술 - 젊음의 열기를 식힌 사색의 시간…‘페리스의 해방’과 시카고미술관

영화 속 캐머런, 쇠라 그림에 몰입
멀리서 보면 온전한 풍경이지만
다가가면 순수한 색의 점만 보여
겉으로는 평범하고 안정된 삶 속
불안·공허한 자신의 내면과 닮아

‘페리스의 해방’ 스틸컷.
‘페리스의 해방’ 스틸컷.


시카고 다운타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 청동사자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곳은 ‘시카고미술관’으로도 불리는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Art Institute of Chicago)’다. 이 미술관은 19세기 후반 지역기업가와 금융자본가의 후원에 힘입어 유럽의 미술품을 대거 수집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30만 점이 넘는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프랑스를 제외하고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 중인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페리스의 해방’에서 시카고미술관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약 40년 전 개봉한 이 청춘 코미디영화는 학교를 벗어나 하루 동안 자유를 만끽하는 세 고등학생의 일탈을 유쾌하게 그려 낸다. 주인공 페리스는 시카고 교외에 사는 졸업반 고등학생이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꾀병을 부려 학교를 결석하고 친구 캐머런과 슬론을 설득해 함께 한낮의 일탈을 감행한다.

세 친구가 캐머런의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고급 스포츠카를 몰래 타고 향한 곳은 시카고 도심이다. 이들은 도시 곳곳의 명소를 누비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건축의 도시’로 불리는 시카고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은 짜릿한 해방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영화가 내내 경쾌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로 전개되다가 중반에 이르면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이 찾아온다. 세 친구가 시카고미술관에 도착하면서다.


2분가량 이어지는 미술관 장면에선 어떤 대사도 들리지 않는다. 배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잭슨 폴록 등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 짧은 컷으로 차례차례 등장한다. 앞서 자유를 즐기며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던 모습과 달리 세 친구는 차분하고 진지하게 작품을 마주한다. 미술관이란 공간이 영화의 속도를 잠시 늦추며 사색의 순간을 만들어 내는 셈이다.

특히 캐머런은 거대한 그림 한 점 앞에 서서 넋을 잃은 듯 작품을 바라본다. 페리스에게 이끌려 나온 캐머런은 영화 전반부 내내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친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일탈에 동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적극 동조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다. 여기에 아버지가 아끼는 자동차를 몰래 타고 나온 일까지 더해지면서 캐머런의 불안과 초조함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그는 그림 한 점에 완전히 몰입한 채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마치 어떤 깨달음을 얻은 듯 서서히 내면의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캐머런을 사로잡은 그림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1884~1886)다. 이 작품은 화창한 주말 오후 프랑스 파리 근교의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멀리서 보면 선명한 색채와 빛으로 가득한 평온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그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모든 형체가 무수히 많은 작은 점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작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림의 표면은 마치 한 겹의 얇은 막처럼 ‘후’ 하고 불면 흩어질 것처럼 느껴지고, 화면에 바짝 다가서면 우리가 멀리서 봤던 색과는 전혀 다른 색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컨대 풀밭의 연두색은 실제로 하나의 색으로 칠해진 게 아니라 초록·노랑·파랑·빨강 점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촘촘히 찍혀 이뤄진 것이다. 쇠라는 물감 위에서 색을 섞기보다 순수한 색의 점들이 관람자의 눈에서 혼합되는 방식을 택했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1884~1886, 캔버스에 유채, 207.6×308㎝, 시카고미술관 소장).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1884~1886, 캔버스에 유채, 207.6×308㎝, 시카고미술관 소장).


그림 속 대부분의 인물은 강가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지만 단 두 사람, 흰 원피스를 입은 어린 소녀와 그 옆의 여인만은 관람객을 향해 정면으로 걷는다. ‘페리스의 해방’에서 캐머런은 바로 이 소녀와 마주 선다. 영화는 캐머런의 얼굴과 그림 속 소녀를 번갈아 비추며 점점 두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이윽고 소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형체가 서서히 흐트러진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인물의 모습은 수많은 색점으로 분해되고, 마침내 먼지 같은 파편으로 흩어져 버린다. 그림에 몰입할수록 터져 버릴 것 같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갔던 걸까. 이 장면에서 캐머런은 흔들리고 분열된 자아와 마주친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온전한 이미지처럼 보이는 쇠라의 인물처럼 캐머런 역시 겉으론 평범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불안과 공허가 자리하고 있음을 영화는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미술관을 나온 뒤 세 친구는 시카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얼마 남지 않은 자유의 시간을 보낸다. 미술관에서부터 조금씩 변화를 보인 캐머런은 집에 돌아갈 무렵 친구들에게 뜻밖의 선언을 한다.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를 짓눌러 온 아버지의 권위에 정면으로 부닥치며 관계를 바로잡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그렇게 굳게 만들었는지 단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쇠라의 작품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해 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 감독 존 휴스는 훗날 인터뷰에서 시카고미술관은 ‘학창 시절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캐머런이 쇠라의 작품 앞에 오래 머무는 장면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그림의 특성과 인물의 심리를 겹쳐 보여 주기 위한 연출이었다고 설명했다. 들여다볼수록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심연, 찾으려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자아의 정체성, 외면하고 싶어도 결국 맞서야 하는 관계의 문제. 영화는 미술관 장면에서 이런 내면의 순간을 잠잠히 바라보도록 한다. 때로는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성장의 과정일 테다.

필자 김유미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에서 교육을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동시대 미술에서 배움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필자 김유미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에서 교육을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동시대 미술에서 배움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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