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성공, 책임, 명예, 헌신, 미래와 같은 말들은 우리 삶의 방향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 낱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스스로 묻는 데엔 익숙지 않다. 대부분은 사전이나 사회가 내려 준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생각인 양 사용한다. 언어에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보편성이 있어 이러한 태도는 효율적이고 안전해 보일 수 있다. 특히 명확한 기준과 질서가 중시되는 군 조직에서는 공통된 언어와 정의가 필수다.
진정한 성장은 그다음 단계에서 시작된다. 보편성을 존중하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정의를 세웠는가라는 질문이다. 타인이 내려 준 정의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사고는 확장되기보다 멈춰 선다. 반대로 같은 말이라도 나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정의할 때, 비로소 생각은 깊어지고 삶의 방향은 선명해진다. 시대를 앞서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나 아는 단어를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정의하고, 그 정의를 기준 삼아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언어는 사회성과 역사성, 보편성을 지닌다. 이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요한 토대다. 보편성은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자신만의 정의가 사전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정의가 나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사물의 본질을 보게 만드는지다. 옳고 그름의 기준조차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한다면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고정돼 있을 이유는 없다. 스스로 정의를 내리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인문학은 ‘모든 사물에 의인화된 관점을 부여하는 학문’이었다. 또한 브랜드는 ‘고객의 머릿속에 남긴 잔상의 합’이라고 나답게 재정의해 왔다. 학술적으로 완벽한 정의일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정의(definition) 덕분에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고, 익숙한 사물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됐다.
우리가 흔히 내뱉는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은 질문을 멈추게 만드는 표현이다. ‘원래(原來)’라는 말속엔 분명한 이유와 과정이 숨어 있다. 원래는 ‘사물이 전해 내려온 그 처음’을 이른다. 그 근원을 묻는 질문(質問)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현재의 모습 너머에 있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생각은 멈춰 있는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업데이트돼야 할 대상이다. 더 나은 통찰을 발견했다면 기존의 생각을 고쳐 쓰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것이 지적 유연함이며 성장의 출발점이다. ‘배달의 민족’ 명함은 이름이 엄청 크게 적혀 있다. 이는 ‘명함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끝에 회사 로고보다 개인의 이름을 더 크게 인쇄한 사례다. 같은 ‘명함’이라는 단어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정의했을 뿐인데, 조직이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군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책임, 명예, 헌신과 같은 낱말을 사전적 뜻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정의해 보자. 그 정의가 가슴에 새겨질 때 일상의 훈련과 임무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관점이 바뀌면 질문이 달라지고, 질문이 달라지면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크기 역시 달라진다. 나만의 정의를 갖는 것, 그것이 치열한 현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이 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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