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온도, 하나의 슬픔

입력 2026. 03. 10   16:27
업데이트 2026. 03. 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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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스테이지 - 연극 ‘나의 죽음을 애도하기’

한 사람이 죽으면, 한 명의 ‘나’도 함께 사라진다.

연극 ‘나의 죽음을 애도하기’는 제목부터 관객을 멈칫하게 만든다. 눈앞에선 어머니의 장례식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작 제목은 ‘엄마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이다. 서울 대학로 TOM에서 공연 중인 이 창작극은 상실의 풍경을 통해 죽음 이후 달라지는 ‘나의 시간’을 조용히 바라본다.

제작사 콘텐츠합의 ‘2026 합 프로젝트’ 첫 작품으로 선보인 이 연극은 제60회 동아연극상 신인 연출상을 받은 박주영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 장례식장이라는 제한된 공간, 남매간 두 인물의 대화와 충돌이라는 단출한 설정 속에서 이 연극은 한 시절이 저무는 순간을 세필로 그려 나간다. 화려한 장치도, 거대한 사건도 없다. 대신 말 한마디, 침묵 하나로 장례식장 공기를 바꿔 나간다.

이야기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 이후 맞은 장례식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시간순으로 이어진다. 누나 ‘어진’과 동생 ‘도진’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죽음을 마주하지만 애도방식은 판이하다. 어진은 상주로서 장례 절차를 챙기고 조문객을 맞으며 현실을 정리한다. 도진은 영정 앞에서 무너지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반복해 꺼내 놓으며 감정을 쏟아 낸다.


울지 않는 누나와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동생. 작품은 두 사람의 온도 차를 갈등의 장치로 활용하지만, 어느 한쪽을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견디는 것 또한 애도이고, 쏟아 내는 것 역시 애도다. 슬픔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몫이란 사실을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강연정이 연기한 ‘어진’은 이 작품의 뼈대를 붙들고 있는 중심인물이다. 어진은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정리하는 사람이다. 장녀의 책임, 사회인으로 해야 할 역할, 상주의 의무가 조그만 어깨 위에 겹겹이 얹혀 있다. 슬퍼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더 곧게 허리를 세운다.

강연정은 오랫동안 지켜본 배우다. 처음 그를 본 공연은 아마 뮤지컬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였을 것이다. 그는 백설공주가 아니라 난장이 ‘반달’이었다. 심지어 대사와 노래를 마임으로 표현해 그의 목소리는 공연이 끝나고서야 들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그가 출연한 작품을 볼 때마다 늘 비슷한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길게, 좀 더 깊게 그의 연기를 보고 싶다는 갈증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마른 목구멍에 탄산음료를 들이붓는 듯한 기회였다.


강연정은 ‘표정이 많은 배우’다. 여기서 말하는 표정은 눈썹의 각도나 입술의 떨림 같은 기술적 움직임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장면에 표정을 입힐 줄 안다. 인물을 넘어 극 전체의 얼굴을 바꾼다. 같은 대사인데도 그의 호흡 위에 올라타면 전혀 다른 문양의 장면이 된다.

어진을 차갑고 매정한 인물로만 읽어 버리면 이 역할은 금세 납작해진다. 강연정의 어진은 한 대사, 한 장면 안에서도 자주 미세한 균열을 만든다. 말은 건조하게 떨어지는데 공기는 촉촉해지고, 당당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미 한 번 무너진 흔적이 보인다. 울지 않는데도 울음이 지나간 자리. 그 어긋남과 미묘한 틈이 인물에 입체감을 만든다.

관객은 어느 순간 강연정이 이끄는 어진의 안쪽으로 조용히 빨려 들어간다. 공기가 눌렸다가 다시 풀린다. 그 리듬을 쥐었다 펴는 힘이 이 배우에게 있다.

김창일이 연기한 ‘도진’은 어진의 반대편에서 감정을 직선으로 밀어붙인다. 영정 사진을 볼 때마다 오열하며 엄마의 기억을 끊임없이 호출한다. 누나가 울지 않는 이유를 따져 묻고 의문과 분노를 쏟는다. 그의 직선은 어진의 곡선과 충돌하고, 그 충돌은 장례식장에 파문을 일으킨다.

작품은 장례의 현실도 세밀하게 포착한다. 조문객을 맞이하고 부조를 정리하고 끊임없이 절차를 결정해야 하는 분주함.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해결해야 할 일이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조금씩 어른이 된다. 장례식장은 비극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일상이 지속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슬픔은 진행 중인데 커피는 식고, 전화는 울리고, 누군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아버지를 보내 드렸다. 보는 내내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에서의 고단했던 나흘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이 작품을 불편할 정도로, 지독하게 몰입해 볼 수 있었던 이유다. 제목에 관한 궁금증은 공연 내내 따라붙었다. 왜 ‘엄마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일까. 박주영 연출은 이 질문에 이렇게 설명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다루지만 사실은 그 죽음 이후 달라지는 ‘나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딸로, 가족으로 살아갑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한 사람의 상실이면서 동시에 ‘엄마의 딸’로 살아오던 시간의 끝이기도 합니다.”

동생이 떠난 뒤 홀로 남은 어진의 모습은 그래서 더 깊게 들어온다. 기억 속 엄마를 보내는 순간 애도하는 것은 한 사람의 생이면서 동시에 한 시절의 나다.

마지막 어진의 솔로잉(soloing)은 작품 전체에 찍히는 마침표다. 내가 작가라도 이렇게 끝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그 장면을 마주하니 마음의 근육이 꽉 긴장됐다. 마침표 하나에 이렇게 힘을 줄 수 있다니.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나의 죽음을 애도하기’는 눈물을 강요하는 작품이 아니다. 다만 관객이 각자의 상실을 조용히 떠올릴 수 있도록, 조명을 어둡게 하고 곁에서 자리를 지킬 뿐이다. 그리고 말한다. 슬픔에는 정답도, 정해진 속도도 없다고. 그저 각자의 시간이 있을 뿐이라고. 사진=콘텐츠합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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