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용기, 내가 이어갈 책임

입력 2026. 03. 06   16:32
업데이트 2026. 03. 0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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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맞아 올해 초 작성했던 신년 계획을 다시 떠올린다. ‘한 해를 채우기 위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잇는 약속’이라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며 군인으로서 삶의 태도를 다시금 생각해 봤다. 그 ‘약속’이란 단어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바로 할아버지다.

20년 전에 작고하신 할아버지의 공적을 기리는 무공훈장을 얼마 전 대리 수여했다. 훈장을 마주한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겹쳤다.

어릴 적 아버지 차를 타고 3시간 남짓 달려 경남 남해군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마당에서 두 팔을 벌리면서 “왔나, 우리 강아지!”라며 맞아 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 어린 손녀를 경운기에 태우고 마을 곳곳을 돌면서 “우리 집 먹보”라며 자랑하시던 모습이다. 추억으로 남은 기억 속 한 장면이지만, 그 온기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또렷하다.

할아버지께선 6·25전쟁 당시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셨다.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 아군 진지로 침투하던 북한군을 최초 식별해 분대원들과 함께 교전에 임했던 얘기였다. 긴박한 상황에서 총상을 입고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끝까지 진지를 사수했고, 우리나라와 전우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시절엔 단순한 영웅담으로만 여겼지만, 육군 장교가 된 지금은 그날의 이야기가 얼마나 무거운 책임과 사명을 담고 있었는지 이해하게 됐다.

주어진 상황과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고 맡은 임무에 책임을 다하셨던 할아버지 삶의 태도가 가슴 깊이 남았고, 결국 나를 군인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게 시작된 군 생활이 어느새 4년 차를 맞았다. 올해 말 대위 진급을 앞두고 있다.

진급이 곧 군인으로서 성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요구하는 책임의 무게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신 받은 훈장은 할아버지의 공적을 기리는 것임과 동시에 현재의 내게 던져진 질문처럼 느껴졌다.

2026년 신년계획은 ‘할아버지와의 약속’과도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매년 달성해 온 특급전사를 유지하며 언제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 부모님께 자주 안부를 전하며 가족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것, 외국어 공부를 지속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고, 지키고자 하는 약속이다.

훈장은 과거의 용기를 기록한다. 과거의 용기가 훈장으로 남았다면, 그 의미를 잊지 않고 지켜 내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이제 그 훈장을 대신 수여한 내가 현재의 책임으로 답해야 한다. 훗날 이 훈장이 부끄럽지 않도록 할아버지를 비롯한 선배 세대가 수호한 자리를 오늘의 군인으로서 묵묵히 이어 가겠다고 다짐한다.

유지윤 대위(진) 육군8기동사단 독수리대대
유지윤 대위(진) 육군8기동사단 독수리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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