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의 제2차 세계대전사
강대국이 만든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무엇을 포기하고 어떤 행동 강요당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며 또 다른 역사읽기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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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다툼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서 방독면을 쓰고 참호를 파야 한다니 얼마나 끔찍하고 해괴하며 터무니없는 일일까요. 비록 우리가 크고 힘 있는 이웃과 맞서는 약소국의 처지를 동정할 수는 있어도 단순히 그 나라를 위해 대영제국 전체가 전쟁에 뛰어들 순 없는 법입니다. 만약 우리가 싸워야 한다면 적어도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1938년 9월 28일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라디오 연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흔히 강대국의 이야기로만 기억된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나라, 전쟁의 방향을 결정지은 나라들의 서사는 수없이 반복됐다.
그 거대한 갈등의 한가운데는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은 약소국이 있었다. 그들은 중립을 지키려 애쓰기도 했고, 동맹에 기대 버텨 보려 하기도 했으며, 때론 저항이라는 마지막 선택에 매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길을 택하든 그 결과는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점령과 통제, 식량난과 공포, 일상의 붕괴는 가장 먼저 약한 나라의 몫이 됐고 강대국이 만들어 낸 전쟁의 무게는 고스란히 그들의 삶 위에 내려앉았다. 최근 출간된 『약소국의 제2차 세계대전사』가 눈길을 끄는 이유다. 약소국의 시선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다시 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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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과 ‘추축(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대항해 싸운 군사동맹)’에 섰던 많은 약소국이 등장한다. 에티오피아나 핀란드처럼 어떤 강대국의 위협에도 기죽지 않고 기개를 보여 준 나라가 있는가 하면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처럼 지도자들이 평화 분위기에 젖어 전쟁을 잊은 대가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파국을 맞은 나라도 있었다.
무솔리니의 침략에 맞서 위대한 투쟁을 보여 준 그리스는 막상 침략자를 격퇴하자 자신들도 영토 욕심을 부렸고, 그것이 화근이 돼 히틀러의 개입을 자초했다.
루마니아가 히틀러의 동방원정에 가세한 것은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스탈린를 향한 원한과 영토 회복을 위해서였지만, 핀란드와 달리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못해 공산화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현장감 넘치는 사진과 각국의 세력권, 전쟁 흐름을 한눈에 보여 주는 지도, 세세한 전투 서열 표를 통해 독자는 승자의 서사에 가려져 있던 작은 나라들의 결정과 그 대가를 차분히 따라간다. 책은 그 선택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불가피해졌는지, 국제정치의 현실이 약소국에 무엇을 포기하게 하고 어떤 행동을 강요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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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역사적 현장을 그대로 복원하는 까닭은 강자만이 옳고 약자는 그르다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역사를 읽는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저자가 짚는 문제의식은 제2차 세계대전을 넘어 현재까지 닿는다. 당시 약소국들이 겪었던 경험이 그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반복되는 구조여서다.
특히 전쟁 이후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유엔과 국제사법재판소 같은 기구를 만들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이 주도권을 쥐고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약소국의 사례로 구체화하고 우리에게 무엇을 성찰해야 할지 알려 준다. 침략당한 국가, 전쟁에 휘말린 국가는 각기 다른 결말을 맞았지만 공통적으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정치체제의 변화, 영토 문제, 사회적 불안이라는 긴 여운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는 것.
저자는 전쟁의 본모습은 언제나 가장 힘없는 곳에서 제일 먼저 드러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자신과 가족, 나라를 지키고 평화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송시연 기자/사진=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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