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 통해 드러난 서방 문명의 구조적 위기

입력 2026. 03. 04   17:12
업데이트 2026. 03. 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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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패배


에마뉘엘 토드 지음 / 권지현 옮김 / 아카넷 펴냄
에마뉘엘 토드 지음 / 권지현 옮김 / 아카넷 펴냄



신간 『서방의 패배』는 발발 4년째를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서방세계의 구조적 위기를 분석한 책이다.

러·우 전쟁은 영원한 평화가 정착됐다고 믿었던 유럽 대륙에서 일어났고, 우크라이나가 금방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으면서 서방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 인류학자인 저자는 이 전쟁과 관련해 유럽이 미국의 전략에 편승해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으면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책에서 오늘날의 미국을 서방 위기의 핵심으로 짚는다. 미국의 군사적 기제는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을 정당화하고 사회를 통합해 온 문화적·도덕적 중심은 이미 붕괴됐다고 진단한 것. 미국의 종교적 기반 약화와 중산층 해체는 미국 사회를 더 이상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의 대외행동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제조업 기반이 약화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지속되는 군사적 개입, 현실과 유리된 엘리트의 의사결정, 전략적 목표가 불분명한 전쟁 참가는 합리적 선택이라기보다 관성의 산물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는 러·우 전쟁이 미국의 힘을 과시한 사건이 아니라 미국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과정으로 해석한다. 그러면서 미국이란 시스템이 어떤 역사적 단계에 진입했는지 분석하고, 그 결과가 서방 전체에 어떤 파장을 미치는지를 차분히 보여 준다.

또 2022년 2월 24일 전쟁을 촉발한 러시아의 군사행동이 이미 진행 중이던 세계질서의 균열을 가시화한 사건이며, 그 중심엔 서방 문명의 구조적 위기가 놓여 있다고 분석한다. 서방은 여전히 ‘민주주의’ ‘자유’ ‘규범’ 등 듣기에 그럴싸한 말을 반복하지만, 전쟁은 이런 겉만 번지르르한 말과 슬로건으로 지탱될 수 없다. 오히려 허울뿐인 서방의 허상을 벗겨 내는 시험대가 됐다.

저자의 이런 분석이 러·우 전쟁에만 국한된 걸까? 고작 엿새 전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이 발발했다.

러·우 전쟁이 장기화하는 현시점에 시작된 이 전쟁은 어떤 서방세계의 취약점을 보여 주게 될까? 러·우 전쟁을 분석한 저자의 틀을 새로운 전쟁에 적용해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의 분석에 다시 한번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송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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