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과 처음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잠시 명함을 들여다보면서 회사명과 직함에 관심을 보인다. ‘공적말하기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인 나에게는 명함을 받아 든 상대방이 “공적말하기연구소는 어떤 걸 연구하나요?”라고 물어올 때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럴 경우 대부분 ‘공적’을 [공적]이라고 읽는다. ‘수고와 노력을 들여 쌓은 업적’을 뜻하는 ‘공적(功績)’을 떠올린 것이다. 간혹 ‘공중의 적’을 이르는 ‘공적(公敵)’을 떠올린 분들과는 어색한 웃음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연구소가 다루는 ‘공적 말하기’의 ‘공적(公的)’은 공동체나 사회를 가리키는 단어로 [공쩍]이라고 발음한다. 그런 질문에 이어 자연스레 답하곤 한다.
“저는 ‘공적[공쩍]말하기연구소’ 대표 정연주입니다.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하는 공적 말하기를 연구하고 코칭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상대방의 눈빛이 조금 달라진다. ‘개인적인 말하기’와 ‘공적인 말하기’가 다르다는 점을 새삼 흥미롭게 느끼며 대화를 이어 간다.
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사람의 삶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나눴다. 사적 영역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 활동이 이뤄지는 것, 공적 영역은 타인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함께 형성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내가 타인에게 목소리를 내고, 그 울림이 타인의 인식에 닿는 순간 고립된 개인을 넘어 공동체 속에서 실제로 숨 쉬는 인간이 된다고도 설명한다.
공적말하기연구소에서 정의하는 ‘공적 말하기’는 이 사유와 맥을 같이한다. 공적 자아(Public Self)로서 행하는 모든 말하기를 이르고, 공적 영역에 나를 드러내고 나의 언어로 타인과 연결되며, 우리가 함께 살아갈 세계를 위한 책임 있는 발화를 의미한다.
공적 영역에서 나의 말하기는 단지 공기를 울리는 진동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비치는 ‘나의 존재’ 그 자체일 수 있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감정을 공유하기보다 공동체에서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고, 나의 말이 공동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지 생각하며 책임의식을 갖고 얘기해야 한다. 그러려면 조금은 공적 말하기의 엄격한 기준을 알고 체계적으로 훈련할 필요가 있다.
회의 중 “이 일에 불만이 많아요”라고 발언하는 것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개인적인 말하기에 해당한다. 같은 사안에 대해 “이 일의 방식이 우리 팀 전체의 신뢰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라고 물을 수 있어야 비로소 ‘공적인 말하기’가 된다. 나의 감정을 넘어 공동의 문제로 시선을 전환하는 것이 바로 공적 말하기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대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로 소통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과 나 역시 지면을 통해 쓰고 읽는 행위로 서로의 생각을 이어 보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당신을 떠올리면서 컴퓨터 화면 속에 글자를 새겨 나가고 있다. 이 글이 나 혼자 보고 말 ‘일기’가 아니기에 귀한 지면에 걸맞은 글을 쓰고자 몇 번이고 형식적·내용적으로 세심히 살핀다.
듣고 말하는 행위 역시 공적 영역에서 이뤄진다면 좀 더 면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내 말에 담길 내용이 과연 타당한지, 내 말이 타인과 내가 속한 조직·공동체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이 너무 거창하게 여겨진다면 잠시 멈춰 돌아볼 일이다. 공적 자아로서 당신의 말하기가 얼마나 많은 이에게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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