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2045년경 인공지능(AI)의 기술적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져 인류가 그 결과를 예측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지점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AI와 나노·생명공학 기술 등의 결합이 노동·경제·사회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류의 뇌와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등 노화와 질병마저 해결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측 중 상당수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자율주행, 의료와 금융, 심지어 군에서도 AI는 핵심적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한 인터뷰에서 이미 우리는 ‘특이점’에 와 있으며 AI로 ‘죽도록 프로그램된 존재’인 인류의 생존방식 문제를 해결해 장수는 물론 죽음은 필연이 아닌 선택이 되는 ‘준불멸’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기계의 출현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AI 시대에 과연 종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질문 앞에서 많은 이는 종교의 종말을 예상한다.
종교가 다뤄 왔던 문제들, 이를테면 생존의 불안, 질병과 죽음 앞에서의 두려움, 미래의 불확실성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차 해소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AI가 노동을 대신하고, 의료 기술이 생명을 연장하며, 인간의 한계를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면 굳이 신에게 기도하거나 초월적 존재를 상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종교는 애초에 단지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도구’로 존재해 온 게 아니다. 종교는 인간이 얼마나 오래 사는가, 얼마나 편리하게 사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에 질문하고 답한다. AI는 ‘할 수 있음’의 영역을 비약적으로 확장하지만 여전히 ‘어떠해야 함’의 기준, 곧 보편적 선과 악의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 제시하지 못한다.
AI의 등장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던진다. 인간의 사고와 판단, 심지어 감정까지 모방하는 기계가 등장하고 기억과 의식이 데이터화되고 뇌와 기계가 연결되는 시대에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죽음이 기술적으로 유예되거나 선택 가능한 것이 된다면 윤리적 삶의 의미는 여전히 유지될 수 있는가? 과연 AI는 인간의 도덕법칙과 합당한 행복을 보장할 ‘최고선’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이 지점에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성경은 인간을 고도로 발달한 생물학적 존재나 정보처리 시스템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며, 그 존엄은 기능·능력·수명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인간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에 의해 규정된다.
기독교는 인간의 불완전성이 육체적 죽음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죽음이 제거된 인간에게 종교적 구원은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성경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영적(spirit) 생명을 통한 영원(eternity)을 구원이라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AI가 발달해 인류의 존재방식이 변화된다고 하더라도 인류는 절대적 윤리에서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AI 시대는 종교가 쓸모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종교가 무엇을 말해 왔는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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