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스테이지 >> 연극 ‘사의 찬미’
백 투 더 스테이지 >> 연극 ‘사의 찬미’
사랑이 그들을 바다로 밀어 넣었을까.
1926년 8월 4일 새벽,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호에서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사라졌다. 유서도, 목격자도 분명치 않았지만 세상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동반자살’.
그 뒤로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의문은 꿰매다가 만 상처처럼 남아 있다. 정말 뛰어내렸을까. 정말 사랑 때문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몰렸을까.
연극 ‘사의 찬미’는 그 물음표를 무대 위에 세웠다. 윤대성의 희곡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각색을 거친 이 작품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번 시즌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비극적 연애담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이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인물의 안쪽 깊숙이 밀어 넣는다.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삶의 운전대를 누가 잡을 것인가’를 묻는 드라마다.
극은 액자식 구조로 펼쳐진다. 중앙에선 김우진과 윤심덕의 시간이 흐르고, 한쪽에서는 홍난파가 일본인 형사 요시다에게 과거를 들려준다. 또 다른 한편에선 프랑스 파리에서 윤심덕과 조선 최초의 여성 화가 나혜석이 마주 앉는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상상이 교차하며 장면이 이어진다.
무대 뒤편의 영상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또 한 명의 배우처럼 움직인다. 잔잔한 물결이 출렁이다가 도쿄의 연습실이 되고, 파리의 화실이 되고, 다시 배 위의 갑판이 된다. 무대 한쪽에선 피아니스트가 조용히 건반을 두드린다. 피아노의 아련한 선율이 장면과 장면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다. 장면이 바뀐다기보다 시간이 접히는 느낌이다.
서예지(윤심덕), 곽시양(김우진), 김건호(홍난파) 캐스팅으로 봤다. 서예지를 무대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서예지는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우라를 드러냈다.
매체 배우가 연극 무대에 설 경우 장점도 분명하지만, 성량이 아쉬워 객석 끝까지 대사가 정확히 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예지는 달랐다. 마치 TV 앞에 바짝 붙어 보는 것처럼 또렷하고 입체감 있는 대사 전달력을 보여 줬다. 특유의 매력적인 중저음 음색, 드라마에서 봤던 억양이 윤심덕과 잘 어울렸다. 특히 일본 유학 시절의 윤심덕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아, 실제 윤심덕이 저랬겠구나’라기보다 ‘아, 실제 윤심덕이 저랬으면 좋았겠다’ 싶어질 정도다. 모처럼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 놨으니 앞으로도 연극 무대에 종종 서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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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시양의 김우진도 좋았다. 키가 너무 커 순간 놀랐다. 덕분에 꽤 서구적인 분위기의 김우진이 됐다. 무대에서 유독 홀로 서 있는 듯한 인상이 강해 김우진의 고독이 더 생생하게 와닿았다.
이번 시즌의 윤심덕은 가련한 여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강력한 생활인이자 가장이며, 동시에 예술가다. 세상의 시선과 언론의 독한 매도에도 자기 길을 놓지 않으려 한다. 윤심덕의 “나 같은 여잘 사랑하지 마! 너의 에너지가 다 소실돼 버릴 거야”라는 대사는 단순한 연애 경고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의 피를 토하는 고백이자 선언이다.
김우진이 “심덕인 불이거든!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여자야!”라고 말할 때 그 불은 아슬아슬 위태로워 보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예술을 알아보는 동반자였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불과 불이 만나면 더 따뜻해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화재경보가 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우진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물이다. 곽시양은 그 흔들림을 과장하지 않았다. 감정을 한 박자씩 늦춰 눌러 담듯이 표현했다. “만일 내가 그녀의 사랑에 대답하면 우린 타 버리고 만다”는 대사에서 김우진이란 인물이 좀 더 분명해진다. 덕분에 그는 비겁한 남자가 아니라 시대와 가족, 이상과 책임 사이에서 길을 잃은 예술가로 그려졌다.
김건호의 홍난파는 극의 숨구멍이다. 그는 증인이자 해설자, 은근한 분위기 몰이꾼이다. 요시다와의 대화는 긴장과 유머를 오간다. 이야기가 무거워져 바닥으로 가라앉으려 할 때마다 홍난파는 살짝살짝 건져 올린다. 진한 커피에 물 한 모금이 더해진 느낌이다.
나혜석의 배치 역시 흥미롭다. 실존 인물과 허구가 교차하는 설정은 ‘팩션(Faction)’의 매력을 잘 보여 준다. 긴 대화를 나누며 나혜석은 하룻밤 새 윤심덕의 초상을 그린다. 세상이 덧씌운 추문의 이미지를 벗기고, 한 인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이다. 두 여성 예술가가 마주 앉아 서로의 고독을 읽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남성 중심의 시대가 붙여 놓은 초라한 이름표를 한 장씩 떼어 내는 느낌이다.
결말은 분명하게 닫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정말 죽음을 택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삶을 향해 몸을 던졌는지 명확히 말해 주지 않는다. 그 여백이 이 작품의 힘이다. 답을 주지 않기에 관객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여운을 붙잡게 된다. 그런 점에서 결말을 조금 더 열어 뒀어도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 ‘사의 찬미’는 비극적 로맨스를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무게를 묻는다. 100년 전 대한해협 위에서 타올랐던 불꽃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손짓한다. 사랑은 뜨겁고, 시대는 차갑다. 그 사이에서 끝내 자기 이름으로 살겠다고 외쳤던 사람들. 이 작품은 그들의 비극을 애도하기보다 그들의 선택을 다시 현재로 불러낸다.
불은 꺼졌는지 몰라도, 그날의 결단은 아직 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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