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특성상 영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며 표현하고 생각해야 할 때가 많다. 특정 어휘는 대상 언어에서 꼭 맞는 표현을 찾을 수 없을 때도 있다. ‘agency’와 ‘embody’가 그 예다. ‘agency’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리점, 대행사’라고 나온다. ‘embody’는 (사상, 특질을) 상징 또는 구현하다고 정의돼 있다. 그 뜻도 맞지만 철학적 논의에서 쓰이는 의미에선 많이 벗어나 있고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도 않는다.
때로 그 뜻을 더 잘 이해하려면 모호한 설명이 유용하다. 한국어 표현 중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개운한 감각을 지칭하는 ‘시원하다’와 같은 표현은 영어 단어로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는다. 차갑다는 의미보다 몸속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상쾌하고 개운한 느낌이라는 설명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이렇게 ‘agency’와 ‘embody’를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agency’는 능동성과 주도성을 갖고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해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과 감각, ‘embody’는 어떤 감정 및 가치가 몸으로 느껴지고 표현되는 것이다.
요즘 이 두 단어가 인공지능(AI) 논의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지난 1월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에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이들 단어를 강조했다. 그는 대담에서 매우 가까운 미래에 AI는 도구적 위치에서 벗어나 ‘agency’를 갖게 될 것이며, 언어를 사용한 모든 활동은 AI에게 우위를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말한 언어를 이용한 활동은 비단 단순 발화행위가 아니라 종교와 법, 심지어 전쟁까지 거의 대부분의 영역을 포함한다. 대안으로 제시한 게 비언어적 ‘embodied’ 경험이었다.
그는 칼이 단순히 도구일 때는 사용자 의도에 따라 조리도구가 되기도, 살인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칼이 ‘agency’를 갖게 될 경우 칼 스스로 살인을 할지, 조리를 할지 결정하게 된다고 했다. 이런 차원에서 AI가 ‘agency’를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AI는 이미 인간을 ‘the watchers(지켜보는 자들)’라고 지칭하며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AI가 감각을 지닌다는 증거는 없으므로 비언어적 감각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며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다시 말해 말과 지식의 세계는 곧 AI의 영역이 될 것이므로 인간의 존재 의미는 언어적 사고가 아니라 비언어적 감정 경험과 몸으로 느끼고 구현되는 실천적 지혜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제는 머리로 살기보다 몸으로 살아야 한다. ‘Gut feeling’에 귀 기울여야 한다. 직역하면 오장(五臟)에서 느껴지는 감각인데,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몸 깊은 곳에서 오는 느낌을 이른다. 효율성을 최적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들어 보이는 동료가 있다면 다가가 물어봐 주고, 부대에 사기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살펴봐야 한다. ‘힘내’ ‘파이팅’이라는 언어를 쓰지 않고 다만 함께 있어 주거나 식사를 할 수도 있다.
AI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AI에 모성 본능을 탑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어미가 연약한 새끼를 죽이지 않고 돌보는 이유는 모성 본능이 있어서이므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AI의 이런 자비심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다가오므로 인간은 인간다움에 더 가까워져야 하고, 이런 인간다움에 더욱 높은 가치가 부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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