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 노백린 장군 순국 100주기 추모제
서울현충원서 유족 등 100여 명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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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계원 노백린 장군의 순국 100주기 추모제가 지난 20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됐다.
계원노백린장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제에는 노백린 장군의 유족과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 이종찬 광복회장, 송우범 공군역사기록단장 직무대리, 김관호(공군준장) 합참 정보계획부장, 박성재 황해중앙도민 회장, 서울 관내 광복회지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국민의례, 찬송, 약력보고, 추모사, 헌화·분향 순서로 진행됐다.
강 차관은 추모사에서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노백린 장군을 비롯한 애국선열들의 피와 땀 위에 서 있다”면서 “보훈부는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던 선열들의 고귀한 생애와 뜻을 우리의 후손들도 영원히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노 장군은 대한제국 군인 출신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체계를 정비하고 항공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한 선구적 인물로 꼽힌다. 1875년 1월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난 노 장군은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자 안창호·이갑·이동녕·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고향인 송화에 광무학당을 설립하는 등 구국교육운동도 전개했다.
1916년 미국으로 향한 노 장군은 하와이 오아후 가할루 지방에서 박용만 선생 등과 함께 국민군단을 창설하고 별동대 주임으로서 독립군 300여 명을 양성했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군무총장을 역임하며 독립군 통합과 군사체계 정비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그는 우수한 공군력이 미래 전쟁을 좌우한다는 신념을 갖고 일찍이 비행사 양성과 항공전력 확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1920년에는 한인교포들의 도움을 받아 미 캘리포니아 윌로스에 한인비행학교를 창설, 1923년까지 졸업생 77명을 배출하는 등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정신적·역사적 기반을 마련했다. 노 장군은 개교식에서 “우리 비행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본 도쿄다. 독립전쟁이 일어날 때 우리 공군이 일본에 날아가 도쿄 시내를 쑥대밭이 되도록 폭격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노 장군의 이러한 업적은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역사적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공군은 노 장군을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다.
1923년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임명돼 국정을 총괄하며 임시정부의 발전에 헌신했던 노 장군은 1926년 1월 22일 상하이에서 순국했다. 상하이에 묻혀 있던 유해는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봉환돼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에 모셔졌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김관호(공군준장) 합참 정보계획부장은 “노백린 장군께서는 장차 항공력이 전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소신과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인재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며 “그 소신과 신념을 이어받아 어떤 상황에서도 강력한 전투력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최강의 공군이 돼 한반도 안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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