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지도자 광기 아닌 정교한 계산?
인류사 뒤흔든 전쟁을 유인·제도라는 경제적 개념으로 재해석
칭기즈칸의 세계 제패·2차 대전 독일 공군 등 다양한 사례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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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소식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 하나. 전쟁은 다른 무엇보다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인 선택임에도 왜 끊임없이 발발하는 걸까.
신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는 독특한 시각으로 전쟁을 분석해 이런 의문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경제학자이자 작가, ‘이코노미스트’ 영국 경제·금융 특파원인 저자는 전쟁을 경제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전쟁을 광기 어린 지도자의 폭거나 정치외교적 충돌의 결과물로 보기보다 우리가 흔히 인센티브라고 부르는 ‘유인(incentives)’과 ‘제도(institution)’에 의한 ‘합리적 선택’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요원한 일인 셈이다.
모든 전쟁을 경제적 원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경제’라는 독특한 렌즈로 전쟁을 바라본 점이 신선하고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의외의 통찰을 제공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인구절벽을 맞아 효과적인 인력 획득 방안을 고심하는 우리 군으로선 역사 속에서 여러 나라가 ‘유인’과 ‘제도’를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 그 결과는 어땠는지를 참고할 수 있어 유용할 듯하다.
저자는 유인과 제도를 적절히 활용해 세계를 제패한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았다. 칭기즈칸 이전에도 몽골 지역에는 유목 부족이 있었고 그들은 이미 뛰어난 기마궁수였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자원으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칭기즈칸이 유인을 잘 활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제도를 발전시켜서라고 저자는 분석했다.
칭기즈칸은 먼저 혈연과 씨족집단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몽골의 사회구조를 해체했다. 대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위계질서 안에서 더 많은 보상을 얻었다. 몽골 사회 최상층에 속한 제국 각지의 통치자들은 공동분배제에 따라 전리품을 공식적으로 나눠 가질 권리를 가졌고, 이런 분배 방식은 이후 공식적인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몽골 부족들은 칭기즈칸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체감함으로써 기꺼이 부족 통합에 임했다. 이전에도 저마다 주변 지역을 약탈해 전리품을 챙기곤 했지만, 모든 부족이 통합했을 때의 힘이 각자가 지닌 힘을 산술적으로 더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걸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이 유인과 제도로 엄청난 성과를 이룬 반면 독일 공군은 잘못된 보상으로 자멸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국 전체에서 적 항공기를 40기 이상 격추한 조종사는 총 409명이었다. 그중 93%에 해당하는 379명이 독일 공군 소속이었다. 독일 공군의 최고 기록 보유자 에리히 하르트만은 무려 352기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다. 연합군 소속 조종사가 세운 최고 기록이 66기임을 감안하면 독일 공군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눈부신 성과는 전과에 따른 체계적이고 정교한 보상에 힘입은 바 크다. 격추한 적기 수에 따라 1, 2급 철십자훈장과 기사철십자훈장 등 단계별 훈장이 주어졌고 헤르만 괴링 공군총사령관이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다양한 수단을 이용한 영웅화 작업도 이뤄졌다. 이런 보상체계는 단기적으로 탁월한 성과로 나타났지만, 장기적·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결코 성공이라고 할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일정 횟수 이상 출격한 조종사들은 전선에서 물러나는 게 관행이었지만, 독일 공군 조종사들은 ‘죽을 때까지’ 비행에 임하면서 결과적으로 조종사 자원이 소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훈장, 진급 등 지나치게 지위에 기반한 보상은 역효과를 냈다. 경쟁이 조직 전체의 성과를 끌어올리지 못한 채 조종사들의 위험감수 성향만 높여 조종사 손실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보상체계가 정교하고 효과적인 제도로 뒷받침해야 조직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일부러 질 낮은 무기를 사용했던 중세 유럽의 ‘군사력 모순’부터 의외로 인센티브체계가 합리적이었던 ‘해적의 경영철학’, 화끈한 인센티브로 최강 군대의 기틀을 마련한 ‘영국 해군의 성공비결’ 등 유인과 제도가 전쟁 발발 및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 사례를 들어 풍부하게 제시한다. 학자이자 언론인의 책이어서 쉽게 읽히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다. 김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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