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 픽셀라이프
‘트렌드 없는 게 트렌드’인 세상, 유행 짧아지고 세분화
수없이 많은 경험 수집하며 새로운 도전 갈아타기 반복
가벼운 소비, 2분 명상은 기본, ‘커리어 전환’ 전직까지…
다양한 경험으로 ‘가능성’ 발견, 경험 강박은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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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OO가 인기인 것 같아. 관련된 콘텐츠가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야.”
“그래? 난 처음 듣는데?”
아마도 많은 사람이 비슷한 대화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A는 트렌드로 느끼는 것을 B는 들어본 적조차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A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니다. A가 느낀 것은 트렌드가 맞을 것이다. 다만 특정 집단에만 나타나는 마이크로 트렌드(micro-trend)일 확률이 높다.
마이크로 트렌드의 시대다.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라고 할 만큼 과거에 비해 트렌드 흐름이 잘게 쪼개지고 지속기간도 짧아졌다.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처럼 전국적으로 회자되는 아이템도 등장하지만 그마저도 일시적인 관심에 불과하다.
이처럼 각기 다른 세계에 살아가게 된 것은 소비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장이 고도·세분화됐고, 온라인 공간에는 각자 취향을 충족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실제로 유튜브는 가장 많은 조회수의 영상을 상위에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조회수가 적더라도 다양한 콘텐츠가 주목받을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구성한다고 알려져 있다.
소비 대안이 많아진 환경에서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경험을 수집하고 하나에 머무르는 대신 새로운 경험으로 갈아타기를 반복한다. 이런 모습은 마치 디지털 액정화면과 같다. 작고 많은 픽셀이 모여 화면을 구성하지만 화면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또 다른 그림으로 변한다. 이에 빗대어 요즘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픽셀라이프’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픽셀라이프에서 소비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첫 번째로 ‘가벼운 소비’가 뜬다. 생활용품점이던 다이소에서 화장품이 잘나가는 이유다. 다이소 화장품 매출은 2025년 상반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하는 등 매년 성장하고 있다. 뷰티 카테고리 상품 수도 초기에는 120여 종에 불과했지만 2025년 기준 1400여 종까지 확대됐다. 다이소 화장품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단순히 소비자들이 저렴한 제품을 찾기 때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질 좋은 제품을 ‘가볍게’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다이소에는 ‘정샘물’ ‘마몽드’ 등 유명 브랜드의 세컨 브랜드가 입점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를 써보고 싶었지만 시험삼아 써보기에는 가격 부담을 느꼈던 소비자들에게 품질의 신뢰를 확보하면서도 작은 용량과 낮은 가격대로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독서도 가벼워지고 있다. 1~2시간 안에 완독이 가능한 ‘미니북’이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SNS에서는 200페이지 내외로 작고 가벼운 책을 소개하는 ‘#얇은책추천’ 게시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키링 형태로 작게 제작된 미니북 굿즈도 등장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개봉 3주년을 맞아 팬메이드 굿즈 플랫폼 크낵(cnack)에서 출시한 미니북 키링은 영화 속 명대사를 책 형태로 엮었다. 책 한 편을 모두 읽기는 어려워도 생각날 때마다 대사 한두 마디를 펼쳐 볼 수 있는 독서경험을 제공한다.
제품이 작아진다면 픽셀라이프를 채우는 경험은 더 짧아진다. 이는 패션 트렌드의 변화에서 관찰된다. 최근 1~2년간 붐을 이룬 ‘○○코어(core)’가 대표적이다. 특정 콘셉트의 패션 미학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놈코어(Normcore)를 시작으로 해서 고프코어·블록코어·발레코어 등 수많은 변주가 탄생했다. 최근에는 ‘그래놀라걸 코어’도 등장했는데, 그래놀라를 먹고 살 것처럼 건강하고 자연친화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뜻한다. 과거에는 한 시즌에 하나의 패션이 돋보였다면 최근에는 동시에 여러 ‘코어’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건강관리법도 짧아진다. 바쁜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현대인에게 최적화된 ‘마이크로 웰니스’의 등장이다. 시간을 크게 할애하는 대신 ‘숨쉴 틈’ 정도를 챙기는 소소한 리추얼로 나를 돌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1시간 명상은 부담스럽지만 업무시간 중간에 2분간 명상을 한다거나 퇴근 후 30분 동안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두고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등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른다.
픽셀라이프는 인생 전반으로도 확장된다. ‘인생 N회차’라는 표현처럼 인생을 하나의 단조로운 흐름으로 살아가는 대신 다양한 종류의 경험으로 채우며 다층적으로 살아간다. 커리어가 대표적이다. 이직을 넘어 제2, 제3의 커리어로 전환하는 ‘전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신의 직업이 생각했던 일이 아니라거나 새로운 영역에 대한 아쉬움이 남거나 혹은 프로 운동선수처럼 커리어의 생명이 길지 않을 때 완전히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한다. AI로 인한 변화를 목도하면서 자신의 직업 전망이 밝지 않다고 느낀 사람들이 일찍부터 전직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인생이 길어진 만큼 굳이 하나의 커리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완전한 은퇴를 기다리지 않고 커리어 중간에 휴식기를 갖는 ‘마이크로 은퇴’도 이러한 흐름이다. 채용 플랫폼 캐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Z세대 응답자의 65%가 전통적인 은퇴 대신 마이크로 은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을 가기 위해서(50%)’로 나타났다. 수명과 함께 일하는 기간도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젊은 시절을 일만 하며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갈수록 더 많은 경험을 수집하며 삶의 해상도를 높이고자 한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한 가지 일에 지속성을 갖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개인에게 열린 수많은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더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픽셀라이프에서 배울 점도 있다. 실패 가능성 때문에 머뭇거리기보다 다소 부족함이 생기더라도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자세는 급변하는 시대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픽셀라이프는 비즈니스적으로도 시사점을 던진다. 수많은 트렌드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속도의 경제에서는 시장에 접근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제품을 준비하는 대신 작은 규모로 일단 시도한 후 시장 반응을 통해 신속하게 개선하는 ‘베타 버전’ 전략이 요구된다. 기민함이 곧 생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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