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위치한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본청 건물을 외부에서 바라보면 ‘프리먼홀(Freeman Hall)’이라는 글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6·25전쟁 당시 미2사단 23연대장이었던 폴 L. 프리먼 대령을 기리기 위해 사단 본청 건물을 그의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다.
미 23연대는 1950년 8월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의 끝없는 공세를 막아 내며 적화통일 야욕을 좌절시켰다. 그러나 그해 겨울에는 압록강으로 북진 도중 중공군에 의해 뼈아픈 패배를 맛보기도 했다. 이듬해부터 정전 시까지는 주로 한반도 중동부에서 활약하며 전선을 사수했다. 그중 그들의 영광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75년 전 오늘(2월 13일), 지평리에서였다.
10년 전 양평 결전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매년 2월이면 사단 전 간부가 지평리전투기념탑에 모여 그곳에서 장렬히 산화한 호국영령께 예를 표했다. 당시 지평리전투에서 대대급 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계급을 중장에서 중령으로 낮춰 참전했던 랄프 몽클라르 중령과 그가 이끌던 프랑스 부대의 영웅적 활약에 감명받았다. 그런데 배속된 그 프랑스대대를 지휘하던 미군 연대장이 내가 매일 출근하는 이 건물 이름의 주인공이었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지평리전투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에는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5만 명의 중공군을 맞아 5000명의 병력으로 지평리를 지켜 낸 미 23연대의 활약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평리 서측을 방어한 프랑스대대는 백병전도 불사하며 책임구역을 지켰고, 남쪽의 2대대는 방어선이 거의 붕괴할 뻔한 상황에서 급히 투입된 연대 예비대와 함께 돌파구를 확장하려는 중공군을 막아 냈다. 연대장 프리먼 대령은 종아리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후송을 거부하고 끝까지 연대원들과 지평리를 사수했다.
지평리전투는 중공군에 연거푸 패하며 남쪽으로 밀리던 유엔군이 그들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이자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6·25전쟁의 2대 역전승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평리전투는 전술적 승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당시 세간에는 거듭된 패배로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것이란 여론이 만연했다. 프리먼 대령도 전투 직전 중공군에 의한 포위를 우려해 후방으로 25㎞가량 철수를 건의했었다. 하지만 새롭게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매슈 리지웨이 장군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지평리를 수호할 것을 명령했다. 지휘관 의도를 받들어 악전고투하며 지평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프리먼 대령은 미군과 유엔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대한민국을 지킬 것이라는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 줬다.
최근 주한미군 아파치 헬기 부대가 일부 해체된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지평리전투의 메시지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지금의 흐름은 국제 안보환경이 변하고, 미국 내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전략이 조정되면서 미군도 전력 현대화·효율화를 추진하는 과정일 뿐 우리 군과 함께 대한민국을 끝까지 수호하겠다는 약속은 75년 전 프리먼 대령이 지평리를 지켜 내던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유를 위해 함께 싸웠던 프리먼 대령과 미 23연대, 프랑스군과 우리 선배 전우들께 다시 한번 감사한다. 또한 주한미군 병력이나 무기 숫자가 조정돼도 대한민국 안보에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이 없도록 연합방위태세 강화의 최일선에 있는 연합사단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수호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 드려야겠다는 다짐으로 지평리 전적지 방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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