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장군 순국 116주년을 맞은 올해, 2월 14일이 누구에게는 그저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일 수 있다.
독립운동사에서 2월 14일은 한·일 강제합병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 장군에게 일제 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가슴 아픈 날이자 일본 제국주의가 극에 달한 시점에 한국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는 의미 있고 역사적인 날이다.
안 장군은 1909년 9월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 시찰을 명목으로 러시아의 대장대신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견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기회를 노려 10월 26일 아침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했다. 그를 처단한 직후 안 장군은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삼창하고 곧바로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됐다.
약 석 달 뒤 2월 14일 일본 광둥도독부가 설치한 뤼순감옥 법원에서 안 장군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재판은 형식만 갖춘 절차에 불과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개인의 테러’로 규정했고, 조선 침탈의 책임이나 국제법적 논의는 철저히 배제했다.
안 장군은 3월 26일 중국 뤼순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돼 순국하셨다. 안 장군은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返葬·객지에서 죽은 이의 시체를 그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 장사를 지냄)하지 말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는 유언을 남겼다.
장군의 시신은 아직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일제는 안 장군 순국을 계기로 항일운동이 확산할 것을 우려해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다.
안 장군의 일생은 애국심으로 응집됐으며,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폭력적 침략에 대항하는 살신의 항거였다. 또한 그의 행동은 당시 한반도는 물론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등 동아시아에서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는 세기적 의거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초대총리 저우언라이는 “청일전쟁 이후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임으로써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두 나라 인민의 공통투쟁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국민당 장제스 총통은 안 장군을 기려 “장렬한 뜻이 천년 길이 빛나리”라는 글을 남겼다. 장군은 한반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한반도를 넘어 중국과 동아시아에 귀감이 된 영웅이다.
2026년 국제정세와 안보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하지만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숭고한 정신은 시대를 초월한 불변의 진리이며 모든 군인에게 변함없이 요구되는 정신이다. 우리는 민족의 어려움을 보고 분연히 일어서 독립운동에 매진하고 대의를 위해 불과 서른한 살에 산화한 그의 뜻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충성, 명예, 단결’이라는 특전 훈을 새긴 세계 최정예 대체불가 특전사로서 조국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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