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과 흔적의 경계 감각이란 기억만 남겨 

입력 2026. 02. 12   15:39
업데이트 2026. 02. 12   15:42
0 댓글

우리곁에, 예술>> 선 넘은 미술 ② - 소멸

영구적 보존 대상 보는 시각 뒤집어 특별한 경험 제공
변화 과정 자체 예술 소재로 삼아 작품 의미 되새겨
국립현대미술관 ‘삭는 미술’ 전시 순환·공존 등 주목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전시 전경. 출처=국립현대미술관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전시 전경. 출처=국립현대미술관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 2009, 향가루, 563×530㎝. 출처=국립현대미술관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 2009, 향가루, 563×530㎝. 출처=국립현대미술관


모든 존재는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을 지닌 존재는 결국 죽음에 이르며, 죽음은 곧 소멸을 뜻한다.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것은 시간뿐이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며 순환의 근본적인 원리다.

예술은 어떨까. 썩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불후(不朽)’의 명작처럼 절대 썩지 않는 것, 소멸되지 않는 것이 예술일까. 우리는 보통 예술 작품은 절대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와 내재된 가치, 상징성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과거 회화와 조각은 작품 속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기억과 기념, 상징의 의미를 담기 위해 제작됐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가치와 의미를 전하기 위해 소멸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시간을 넘어 지키고 가꿔 왔다.

하지만 작품이 소멸되는 것이 시간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는 예술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라지곤 한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미술품 파괴와 약탈을 초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연합군이 ‘모뉴먼츠 맨(The Monuments Men)’이라는 특별 부대를 조직해 나치가 약탈한 작품들을 찾아 보호했던 일화는 책과 영화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 또한 6·25전쟁을 겪으며 근현대 미술 작품이 많이 소실돼 미술사 연구에 공백을 남겼다. 전쟁으로 인한 예술품 파괴와 약탈 사례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19세기에 지어진 우크라이나 미술관이 파괴되고 작품이 훼손된 사건은 불과 몇 년 새 일어난 일이다.

예술품의 파괴는 물질적 소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라는 한 국가의 정신적 유산의 소멸과도 연관된다. 그래서 우리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라며, 예술품을 영속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미술관에서는 수장고라는 공간을 만들어 수집한 작품을 오랫동안 안전하게 지키고 보관한다. 수장고는 전쟁과 화재, 자연재해에도 안전하도록 튼튼하게 설계된다. 또한 미술관의 보존과학자는 미술품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해 노화를 방지하고 상처 난 곳을 치료하는 등 작품을 환자처럼 돌본다.

하지만 미술품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 영원히 보존하려는 노력과 반대되는, 선 넘은 작품들이 동시대 미술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처음 만들어진 모습과 달리 점차 소멸돼 작은 흔적만을 남기거나 아예 작품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작가들이 있다. 이들은 소멸 과정 자체를 시각 예술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는 무엇일까.

회화 작업을 주로 한 미국의 작가 존 발데사리는 작품의 물리적 형태보다 아이디어와 개념을 중요시하는 개념미술로 작업 방향을 전환하며 1953년부터 1966년까지 자신이 제작한 모든 회화 작품을 불태웠다. 발데사리는 이 과정을 ‘화장 프로젝트(Cremation Project)’(1970)라 이름 짓고 회화 작품이 전부 타버린 후 남은 재를 쿠키로 만들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창작한 자신의 작품을 한 줌의 재로 만든 발데사리의 선택은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의 실험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선언이었다.

기계적 움직임을 활용하는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 장 팅겔리 또한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뉴욕현대미술관 정원에 스스로 파괴되는 기계 설치 작품 ‘뉴욕 찬가(Homage to New York)’(1960)를 설치했다. 다양한 기계 장치가 작동하다가 폭발과 연소를 일으키며 스스로 파괴되는 형태의 이 작품을 통해 팅겔리는 예술을 영구적 보존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뒤집었다.

국내에서도 오인환 작가가 전시 중 불에 타 소멸돼 버리는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이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2001년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향가루로 정교하게 쓰인 게이바, 클럽 등의 이름이 전시 기간 불에 타며 서서히 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천천히 재가 돼 사라지는 이름들은 물리적 형태가 사라진 채 냄새와 잔재로 기억된다. 이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매뉴얼과 밑그림으로 작품을 재구현한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비누로 제작한 작품도 있다. 신미경 작가는 수분이 닿으면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 비누를 사용해 도작, 유물 등을 재현했다. 변화와 사라짐을 전제로 하는 이 작품을 보존하기 위한 미술관의 노력은 일종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현대미술에서는 일시적 상황과 몸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적 경향의 작품과 개념적 성격을 강조하는 작품들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작품을 영구적 오브제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은 점차 사라지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거나 혹은 처음부터 물질적 실체를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지난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소멸을 주제로 한 전시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1월 30일~5월 3일)가 개최됐다. 소멸을 주제로 한 전시가 구성된다는 것은 동시대 미술에서 비물질과 퍼포먼스 등 영구적 형태를 중요시하지 않는 작품이 많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시는 의도적으로 변하고 사라지게 만든 작품을 모아 ‘삭는 미술’이라고 이름 붙여 소개한다. 또한 삭는다는 것을 발효에 빗대 분해 과정에서 생겨나는 곰팡이와 벌레 등 비인간 존재들과 공존하며 자연의 순환에 동참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인류세가 초래한 전 지구적 환경 위기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을 작품이라는 통념이 여전히 유효한지 묻는다. 소멸한다는 것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는 썩고 삭아지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의미 대신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공존하고 순환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외부 요인에 의해 사라지든, 시간에 따라 소멸돼 가든 물질로 이뤄진 작품은 언젠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남는 것은 어쩌면 예술 작품 그 자체라기보다 예술가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술 작품의 소멸이 미술의 영원성을 부정하거나 혹은 무의미함을 강조한다고 할 수는 없다. 형태가 사라진 예술은 물리적 소장의 경험을 넘어 작품을 통해 얻게 되는 감각을 소장하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소멸을 무(無)로 바라보는 대신 소멸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동시대 주체들이 공존하는 방법과 의미를 탐색할 수 있다. 소멸하는 작품은 과잉의 시대에 예술 작품의 진정한 의미와 미래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예술과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성찰하며 그 사이에서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