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빌바오와 대만 가오슝 下
경제성장 그림자에서 문화예술의 숲으로…
토착 원주민 거주해 오던 땅
대나무숲 ‘타카우’로 불리다
‘높고 웅장’ 가오슝으로 개명
‘세계 3대 컨테이너항’ 명성
최대 공업도시로 성장했지만
생산거점 中 이동하며 쇠락
부두 창고, 전시공간 탈바꿈
잔디 위 트램은 도심 가로질러
자연친화적 예술도시로 변신
달콤함 가득, 식도락 여행은 덤
혹독한 추위가 찾아오면 가오슝으로 떠나 보자. 대만 남부 항구도시 가오슝은 겨우내 맑고 따뜻한 날씨여서 ‘런트립(Run Trip)’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중공업 중심지였던 이곳은 굴뚝 연기와 오염에 시달렸지만 시민들의 환경운동과 도시재생으로 보얼예술특구, 아시아 뉴베이 등 문화허브로 탈바꿈했다. 무료버스 정책과 깨끗한 공기 속에서 달리는 가오슝 마라톤은 여행자에게 활력을 준다. 쏸차이샤오빙, 스무위 같은 소울푸드가 고장의 정서를 전하는 맛으로 남는다. 스페인 빌바오처럼 쇠락을 기회로 바꾼 가오슝의 방향성은 우리 지방 도시에도 이정표가 된다.
마라톤이 허락된 축복의 겨울
영 반갑지 않은 한국의 겨울이지만 가오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북부의 타이베이는 겨울철 내내 습하고 우울한 비가 내리지만, 가오슝은 맑고 화창한 하늘을 자랑한다. 겨울, 이 도시를 방문한다면 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풀어 주는 따스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오슝 여행의 적기는 겨울이다. 평균기온은 섭씨 15도에서 24도 사이를 유지하며 습도마저 낮아 야외활동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 축복받은 날씨를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어 하프마라톤에 출전했다. 매년 1월에는 가오슝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주자들은 선선한 1월의 아침 공기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며 달릴 수 있었다. 겨울철 가오슝은 최근 해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보려는 이들에게 런트립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인천, 김포는 물론 김해공항에서도 가오슝 직항편이 운항 중이다.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여서 부담도 작다.
우리가 머문 시기에는 환경오염을 줄이고자 가오슝 내 버스를 무료로 제공해 승차할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도시를 촘촘히 움직여야 하는 여행자에게 버스 무료 혜택은 매우 유용하다. 가오슝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버스 이용을 권하는 정책을 펼친다. 마라톤이 열리는 시기에 제일 중요한 건 공기 질이다. 정부는 마라톤 대회를 전후해 환경정화와 대기질 관리에 각별히 신경 쓴다. 과거 가오슝은 과도한 공장 배출가스와 미세먼지, 중금속 입자 등으로 대기가 매우 탁했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의 1000배가 넘는 유해물질로 고통받던 도시가 가오슝이다. 마라톤 대회는 마음껏 호흡하며 달릴 수 있는 도시로 탈바꿈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다. 그 과정에는 공장 이전, 설비 개선, 교통체계 개선 등 도시 전체가 겪은 고통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대나무숲에서 피어난 부두
가오슝은 17세기 이전부터 토착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땅이다. 이들은 가오슝을 ‘대나무숲’을 이르는 ‘타카우’로 불렀다. 17세기 한족 이주민들은 원주민 발음을 뜻과 무관하게 한자로 음차 표기했다. 현지 발음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결과 ‘개를 때린다’는 우스꽝스러운 의미가 됐다. 1920년 일치 시기(대만은 일제 식민기를 일본 통치 시기, 즉 ‘일치 시기’로 표현한다) 당시 도시 이름이 너무 천박하다고 일본어 발음과 유사한 가오슝으로 개명했다. ‘높고 웅장하다’는 뜻이다. ‘대나무숲’이 ‘개를 때리는’ 곳이었다가 다시 ‘높고 웅장한’이란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이다.
가오슝의 현대사는 대만 경제 성장의 역사 자체다. 일치 시기엔 중국·동남아시아 진출을 위한 물류 거점으로 활용됐다. 이때 항만, 석유 정제소, 조선소, 제철공장 등이 들어서며 초기 중공업의 중심이 됐다. 국민당 정부 시기에는 기반시설을 바탕으로 대만 최대 공업도시로 성장한다. 1970년대 가오슝항은 세계 3대 컨테이너항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만큼 눈부신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이면에는 지독한 검은 연기와 악취,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그림자처럼 깔려 있었다.
1990년대 들어 가오슝의 영광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가 재편되고 중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편입되면서 서구 기업의 생산기지가 대만에서 중국으로 대거 이동했다. 이에 따라 가오슝의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이 급격히 약화했다. 공장이 떠난 자리엔 오염된 토양과 녹슨 크레인만 남았다. 특히 대만 국영 정유사인 중화석유의 정유공장에서 WHO 기준치를 1000배나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유출되는 사고가 터졌다. 가오슝 시민들은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1127일간 연좌농성을 벌여 2015년 정유공장 폐쇄를 끌어냈다. 이것이 바로 1980년대 후반 국제사회가 주목했던 ‘후진 반오경(反五輕) 운동’이다. 중화석유 정유공장(후진 공장) 외에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비료, 발전을 포함한 5대 오염사업을 반대한다는 의미다. 가오슝 시민들이 산업 성장이라는 대의 아래 환경정책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상징적 사건이다.
산업 쇠퇴와 환경에 대한 각성은 생존을 위한 근본적 전환을 요구했다. 당시 가오슝은 산업 기반이 무너지며 청년 실업률이 급증하고 인구가 유출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도시는 더 이상 굴뚝의 연기가 아닌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문화적 매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도시 변화의 롤모델로 중공업도시를 문화도시로 변화시킨 빌바오를 벤치마킹한다.
도시를 위한 대전환
가오슝 산업 전환의 상징은 ‘보얼예술특구’다. 제2부두의 화물창고는 해운업의 몰락으로 한때 철거 위기에 처했다. 2000년대 들어 창작공간으로 제공하며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부식된 크레인과 녹슨 컨테이너가 조형물로 재해석되고 창고 안에는 현대미술품과 창의적인 숍들이 들어섰다.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도 반드시 방문해야 할 매력적인 장소가 됐다. 제2부두가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면서 가오슝의 산업구조도 변화했다.
가오슝의 도시재생사업은 지금도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약 590㏊ 규모의 아시아 뉴베이 구역 개발로 규모를 확장하며 첨단 정보기술(IT) 단지로 발전시켜 대만의 실리콘밸리 역할을 한다. 이 구역은 과거 오염된 공장지대였지만 토양정화와 복원을 거쳐 음악센터, 컨벤션센터, 공공도서관이 들어서며 문화허브로 거듭났다. 민간 주도 프로젝트도 활발하다. 오래된 알루미늄 생산공장을 리모델링해 문화 복합단지로 만든 MLD 같은 사례를 만날 수 있다.
가오슝은 빌바오를 벤치마킹하며 교통 인프라에 혁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순환 경전철(LRT·트램)은 인간의 속도가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들었다. 녹색 잔디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는 트램은 그 자체로 자연친화적 이미지를 형성하며 랜드마크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네덜란드의 메카누건축사무소가 설계한 가오슝 중앙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도심에 넓은 공공녹지공간을 제공한다. 효율적인 교통 흐름보다 도시의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경험을 우선한 설계 철학이다. 대형 캐노피 위에 자전거도로를 설치하고, 이전에 사용하던 가오슝역을 보존해 과거와 현재를 상징적으로 연결했다. 사람들이 흘러 나가는 도시가 아닌 머물고 싶은 곳이 되려고 하는 가오슝의 새로운 철학을 보여 주는 증거다.
가오슝의 변신은 현재진행형이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도쿄올림픽 스타디움을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 구마 겐고가 후진역 복합시설을 만들고 있다. ‘후진 반오경’ 운동으로 정유공장이 떠난 자리에 세워질 친환경 수직정원형 건축물은 가오슝 사람들의 새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여행의 교재, 현지 음식
멋진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도 즐겁지만, 여행이 주는 강렬한 기억은 혀끝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한 대만, 그중에서도 가오슝은 멋진 여행지다.
가오슝에서 한 달을 머물며 아침마다 시내를 뛰었다. 하루는 숙소 앞에 이른 새벽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식욕을 참을 수 없어 달리기를 멈추고 현지인들 틈에 앉았다. 그들이 먹는 것은 화덕에 구운 빵인 샤오빙 속에 꽈배기처럼 생긴 요우티아오를 끼워 넣은 음식이었다. 여기에 짭조름하게 절인 채소인 쏸차이를 곁들여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소박한 아침 메뉴는 국공내전 후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의 역사를 대변한다. 가오슝은 국민당 해군이 자리 잡으며 군인마을이 생겨났다. 고향 음식 중 미군 보급물자인 밀가루를 이용해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다. 대전의 성심당이 미군이 보급한 밀가루 포대로 빵을 굽기 시작했듯이 가오슝의 이주민들도 탄수화물로 허기를 달래며 새로운 땅에 정착했다. 아픈 과거가 담긴 음식이지만 지금은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할아버지와 손자가 마주 앉아 웃으며 먹는 추억의 음식이다.
부족한 단백질은 스무위로 채울 수 있다. 우유처럼 뽀얀 속살을 지녀 영어로는 밀크피시로 불리는 이 생선은 대만 남부 요리의 상징과 같다. 일찍이 양식에 성공한 스무위는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귀중한 단백질원으로서 서민들의 배를 채워 줬다. 손재주 좋은 가오슝인이 잔가시 많은 이 생선을 먹기 편하게 손질한 뒤 맑은 육수에 넣고 끓여 낸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은 여행자의 피로를 씻어 내기에 충분하다.
탄수화물과 단백질로 가오슝 음식을 맛봤다면 단맛도 빼놓을 수 없다. 북부 사람들은 남부 음식이 달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이 달콤함 속에는 가오슝의 근대사가 녹아 있다. 가오슝은 과거 일치 시기 제당산업의 중심지이자 설탕 항구였다. 당시 설탕은 부의 상징이었고 음식에 설탕을 넉넉히 넣는 것을 최고의 손님 대접으로 여겼다. 항구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위로하고, 귀한 손님을 환대하던 그 달콤한 조미료는 그렇게 가오슝의 식문화 그 자체가 됐다.
여행자는 맛으로 여행지의 기억을 채운다. 거기에 더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음식에는 고장의 정서가 담겨 있어 더없이 좋은 여행의 교재가 돼 주기에 무엇 하나 흘려버릴 수 없다.
굴뚝 대신 문화로 채운 두 도시
가오슝과 빌바오는 과거를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녹슨 시간을 예술로 닦아 내며 자신들만의 미래를 조각했다. 빌바오가 구겐하임이란 걸작으로 쇠락한 공업도시에 새 옷을 입혔다면 가오슝은 멈춰 선 컨베이어벨트와 텅 빈 창고를 그대로 둔 채 그 안을 사람들의 웃음과 창작 열기로 채웠다. 진짜 성장은 삶의 질과 문화적 자부심으로 옮겨 간다는 점을 두 도시가 보여 줬다. 한때 도시를 먹여살렸던 땀방울의 역사를 존중하되 더 이상 검은 연기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빌바오 구시가지 선술집에서 핀초스 한 조각을 나누고, 가오슝 아침 식당에서 현지인들 사이에 앉아 밥을 먹으면 알게 된다. 도시는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그 속에 흐르는 기억과 사람들의 온기로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걸 말이다. 가오슝과 빌바오의 길은 쇠락한 지방 도시들이 따라갈 이정표이자 삶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용기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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