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년 왕조 지킨 힘, 최강대국에 맞선 고려식 생존전략
싸우되 비굴하지 않고, 이기되 도취되지 않게…
역사학자 이익주 교수, 군사력 바탕 외교 강조
중립부터 핑계·간보기까지… 실리·균형이 비결
미·중 패권경쟁 속 우리 외교전략에 시사점 제시
“군 장병에게 ‘좋은 지식의 벽돌’ 되길 기대”
“외교정책은 관료나 정치인들이 하지만, 국민 여론도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우리 역사에는 ‘옳고 그름’에만 집착해 폐쇄적이고 일방적이었던 조선의 외교 외에 실용적이고 개방적이었던 고려의 외교도 있었다는 걸 우리 국민에게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썼습니다.”
KBS ‘역사저널 그날’, JTBC ‘차이나는 클라스’, tvN ‘어쩌다 어른’ 등 다수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한국사를 쉽고 깊이 있게 해설해 우리에게 친숙한 역사학자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가 신간 『외교 천재 고려』를 내놨다. 이 교수는 신간에서 고려·몽골 관계사 전공을 살려 중립 외교부터 핑계·간보기 외교까지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해 번영을 이룬 ‘고려식 생존전략’을 소개한다.
“고려는 자신을 과소평가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않았습니다.”
고려 외교의 본질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표현한 이 교수는 수많은 제국이 흥망을 거듭하던 시대에 고려가 500년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상세히 알려 준다. 침략을 받으면 일단 싸우되 결코 비굴하지 않았다. 고려가 몽골의 압도적 군사력에 맞서 30년간 항전을 이어 간 배경이다. 동시에 승리에 도취되지도 않았다. 귀주대첩에서 거란을 물리친 뒤 우쭐할 법도 한데, 오히려 먼저 사신을 보내 상국에 대한 예를 표했다. 덕분에 이후 약 100년간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감정을 배제하고 실리에 따라 움직였던 냉철함이 최강대국에 맞선 작은 나라 고려의 생존전략이었다. 이 교수는 고려의 이런 냉철함을 우리나라가 본받기를 희망했다.
“우리 국민은 ‘좋다’ ‘나쁘다’는 감정으로 다른 나라를 보는 경향이 강하거든요. 하지만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와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제목을 패러디해 보면 ‘우리를 위한 (해외) 나라는 없다’예요. 우리만 우리를 위할 수 있습니다. 모두 자국의 이익을 계산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상대(국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군사력 없이 외교만 잘해도 국가는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을까. 이 교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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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지만, 외교에는 반드시 군사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군사력이 무너지면 외교 기회 자체가 마련되지 않거든요.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고려를 침공했을 때 서희가 협상에 나서 강동 6주를 얻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물어야 할 게 있습니다. ‘소손녕은 왜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까’라는 거죠. 그건 고려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구대국 송나라와 맞서야 했던 거란은 고려와 싸우느라 군사를 많이 잃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고려는 그걸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고려 군대가 약했다면 협상할 이유 자체가 없어요. 군사력은 상대가 외교 테이블에 앉도록 만들어 주는 힘입니다.”
귀주대첩도 마찬가지. 귀주대첩 승리 후 고려는 협상의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귀주대첩 패배 후 거란은 고민에 빠집니다. 고려를 놔두자니 동아시아 패권국 지위가 흔들리고 공격하자니 부담스럽거든요. 고려는 이때 거란을 상국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먼저 제안합니다. 거란이 원하는 걸 정확히 파악한 거죠. 거란으로서는 굉장히 반가웠을 거예요.”
결국 고려의 외교는 탄탄한 군사력의 토양 위에 화려하게 꽃피운 셈. 이 교수는 고려의 이런 외교정책이 미·중 패권 경쟁의 구조화와 국제질서의 빠른 재편으로 어느 때보다 복잡한 선택 앞에 선 대한민국에 좋은 참고가 되길 기대했다.
“군 복무시기는 우리 장병들이 건강한 국가관과 인생관을 형성하며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군 입대 전 아이 같던 우리 학교 학생들도 전역 후 복학했을 때 보면 어른이 된 느낌입니다. 몸도 커지고 책임감도 강해지죠. 군에서 책이나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 텐데, 이때 정말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저는 인생이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불량벽돌이 몇 장 끼게 되면 나중에 집 전체가 허물어질 수도 있어요. 젊은 시절 좋은 벽돌로 자신만의 탄탄한 지식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 책이 좋은 벽돌 하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가영 기자/사진=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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