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람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그라나다 알람브라 - 이슬람 이베리아반도 지배의 최후 보루
이슬람 마지막 왕조 나스르 양식…절제된 외관 안쪽은 화려함 극치
섬세한 조각·기하학적 타일·벽면 가득 아랍어 시문 파노라마처럼
열쇠 넘겨받은 기독교 세력도 원형 유지한 채 새 건축물 덧붙여 사용
|
이베리아반도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 그라나다는 독특한 유적 덕분에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도시 중앙 언덕배기에 이슬람 왕조의 유적인 알람브라궁전(Alhambra Palace)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스페인 역사에서도 남다른 족적을 남기고 있다. 1492년 1월 초 알람브라의 열쇠가 이슬람 왕조 마지막 통치자로부터 기독교도 이사벨라 여왕에게로 인계되며 이베리아반도에 대한 약 800년에 걸친 이슬람의 지배가 종식됐다.
11세기 이래 이베리아반도 북부에서 밀고 내려온 기독교 세력의 ‘레콘키스타(재정복 운동)’가 드디어 완성된 것이었다. 스페인은 같은 해 10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까지 더해지며 유럽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알람브라는 기독교와 이슬람 양측 모두에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알람브라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가로지르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자락 위에 서 있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산과 하늘 사이에 부상한 환상의 세계처럼 보인다. 오늘날 알람브라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그 탄생과 존속의 역사는 전혀 평탄하지 않았다.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 간 벌어진 크고 작은 전쟁 속에서 태어나고 확장된 이곳은 문명이 교차하고 충돌한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전쟁과 인간,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본 연재의 주제를 한곳에 응축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해도 무방하다.
|
알람브라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베리아반도의 격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8세기 초반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당한 반도 남부는 이후 긴 세월 동안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공존과 대립을 반복한 전쟁터로 변했다. 이 긴 쟁투(爭鬪)의 역사는 앞서 언급한 대로 ‘레콘키스타’로 불린다. 그 과정에서 그라나다는 이슬람 세력이 끝까지 지켜낸 최후의 왕국이었다. 13세기경 그라나다의 지배세력인 나스르 왕조는 점차 북쪽에서 밀려오는 기독교 세력에 맞서 생존을 모색해야만 했다. 알람브라는 바로 이러한 불안정한 정치·군사적 상황 속에서 태어났다. 애초에는 왕조의 창건자인 무함마드 1세에 의해 군사용 요새로 시작됐으나 이후 후계자들에 의해 왕궁과 행정 중심지로 확장되며 왕조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알람브라는 사비카 언덕으로 불리는 낮은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다로강 계곡을 내려다보는 전략적 요충지로 남동쪽으로는 장엄한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붉은빛을 띠는 토양 때문에 멀리서 보면 언덕 전체가 붉게 보인다. ‘알람브라’라는 명칭도 아랍어로 ‘붉은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알람브라의 전체 규모는 일반적인 ‘궁전’의 개념을 훨씬 넘어선다. 전체 길이 약 1.7㎞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총면적은 무려 14만㎡에 이른다. 내부에는 망루와 성벽 위 군사 요새, 왕의 공식 궁전, 사적 생활공간, 행정 시설, 정원, 목욕탕, 예배 공간, 그리고 물 저장 및 공급 시스템까지 모두 망라돼 있다. 한마디로 이곳은 단순한 왕의 거처가 아니라 자급자족이 가능한 정치·군사적 소도시였다.
|
알람브라의 건축 양식은 흔히 나스르 양식, 또는 안달루시아 이슬람 건축으로 불린다. 이 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절제된 외관과 대비되는 내부의 극단적인 화려함이다. 바깥에서는 비교적 소박한 성벽과 탑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섬세한 석고 조각, 기하학적 타일 무늬, 식물 문양의 아라베스크,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아랍어 시문(詩文)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부 건축물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코 ‘사자의 중정(中庭)’이다. 중앙 분수대를 둘러싼 열주와 열두 마리의 사자 조각이 받치고 있는 분수는 알람브라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이 공간은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을 넘어 왕의 권력과 우주 질서를 표상한 이념적 장소로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알람브라에서 눈길을 끄는 소재는 물이다. 건조한 사막에서 태어난 이슬람 문화권에서 물은 생명과 낙원을 상징했다. 알람브라 곳곳에 흐르는 수로와 분수는 건조한 그라나다의 자연환경 속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물은 궁전을 식히고, 자연의 소리를 만들며, 특히 햇빛을 반사해 공간에 깊이를 더했다. 이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궁전 거주자들에게 평화와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려 했음을 엿보게 한다. 무명의 석공, 목수, 타일 장인, 서예가의 손길이 수백 년 동안 이어지며 알람브라란 ‘이상향’을 완성한 것이었다.
1492년 1월 2일 이슬람 토후국 그라나다가 기독교 세력에 항복하면서 나스르 왕조는 막을 내렸다. 바로 이날 왕국의 마지막 통치자인 무함마드 12세(스페인어로 보아브딜)는 알람브라 궁전의 열쇠를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넘겼다. 후대에 화폭으로 남겨진 항복 장면은 흔히 기독교의 완전한 승리이자 이슬람 지배의 종말로 묘사되곤 하지만 알람브라 역사에서는 또 다른 변화의 전환점이 됐다. 이곳의 탁월한 미적이며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한 전쟁의 승자가 궁전을 파괴하지 않고 새로운 권력의 공간으로 재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라나다를 정복한 기독교 통치자들은 알람브라의 일부만을 개조해 궁전으로 삼았고, 필요할 때마다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건축물을 덧붙이는 선에서 머물렀다. 이처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알람브라는 더 이상 단일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이슬람과 기독교, 동양과 서양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복합적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
알람브라는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전 인류의 공동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는 알람브라의 존재가 특정 국가나 종교, 민족의 소유를 넘어선다는 의미다. 두 종교 세력 간 벌어진 길고 치열한 전쟁의 산물이던 공간이 이제는 평화와 공존을 상징하는 장소로 세계인의 발길을 잡아당기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알람브라가 후대 우리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쟁은 인간을 분열과 파괴의 길로 이끌지만 격동 속에서 꽃핀 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원한과 증오를 넘어 공존의 기억을 전해준다는 점이다.
오늘날 알람브라의 궁전 길을 소요하는 방문객은 먼 옛날 이슬람 병사처럼 성벽과 망루 위에서 적군을 감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궁전 벽 곳곳에 멋진 서체로 새겨진 아랍어 시구를 읽고, 정원의 수로와 분수가 자아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한때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상상한다. 이 순간 전쟁의 절규는 먼 뒤편으로 물러나고, 생동하는 사람의 숨소리와 문화의 향연이 내뿜는 ‘과거와의 대화’ 속으로 빠져든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