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서 산화한 고 최백인 일병 가족 품으로

입력 2026. 02. 10   17:09
업데이트 2026. 02. 1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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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경북 영천 발굴 유해 신원 확인


김성환(육군중령·오른쪽) 국유단장 직무대리가 10일 고(故) 최백인 일병의 유가족에게 호국의 얼 함을 전달하고 있다. 부대 제공
김성환(육군중령·오른쪽) 국유단장 직무대리가 10일 고(故) 최백인 일병의 유가족에게 호국의 얼 함을 전달하고 있다. 부대 제공



2007년 4월 경북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운주산 일대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10일 6·25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키다 19세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고(故) 최백인 일병을 가족 품으로 모시는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거행했다. 행사는 유가족 요청에 따라 전북 전주시에 거주하는 고인의 여동생 최길자 여사 자택에서 진행됐다. 김성환(육군중령) 국유단장 직무대리는 호국영웅 귀환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이어 고인의 참전 경로와 유해발굴 경과, 신원 확인 과정을 설명했다.

최길자 여사는 “며칠 전에 오빠가 꿈에 보여서 밥 한 그릇이라도 올려야겠다고 생각해 그릇 가게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샀는데, 그날 국유단에서 오빠를 찾았다는 연락이 와서 더욱 꿈만 같았다. 오빠의 유해를 국립묘지 따뜻한 곳에 모시고 싶고, 죽기 전에 오빠를 찾아서 묻어 드릴 수 있어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은 1930년 10월 전북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1950년 8월 입대해 육군 제1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뒤 국군6사단 7연대에 배치됐다. 이후 같은 해 9월 6~13일 전개된 영천전투에서 북한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영천전투는 국군8사단이 1·6사단 각 1개 연대와 함께 영천을 장악한 북한군 15사단을 몰아낸 전투다. 국군과 유엔군은 이때부터 작전 형태를 방어에서 반격으로 전환했다. 윤병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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