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판도 바꾸는 드론·AI>> 번개처럼 강한 전기, 드론 전자두뇌를 마비시키다
특정 표적에 지향 에너지 쏴 선택적으로 무력화
내부 회로에 과도한 유도전류 발생 마비·오작동
경제성 가장 큰 매력…미·영, 잇따라 시험 성공
주파수 의존·차폐기술 취약·전력 소모 등 한계
레이저와 함께 전장 배치 시 시너지 발휘 가능
지난해 8월 미국 인디애나주 캠프 애터버리. 하늘 위로 61대의 소형 드론이 여러 편대로 상승했다. 미 육군 관계자들과 해외 군 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에피루스(Epirus)의 고출력 마이크로파(HPM·High Power Microwave) 무기 레오니다스(Leonidas) 체계가 가동됐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폭발도, 섬광도, 굉음도 없었다. 그러나 시스템이 방사한 전자기 펄스가 전파되자 61대 중 49대가 거의 동시에 동력을 잃고 추락했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끈을 한순간에 잘라 버린 듯한 장면이었다. 에피루스는 시험에 투입된 드론들을 성공적으로 무력화했다고 발표했고, 언론은 HPM 무기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시험장에서 작동하는 무기체계임을 보여 준 사례로 보도했다.
미군은 이미 유사 개념의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미 공군연구소는 2019년부터 이른바 ‘토르(THOR·Tactical High-power Operational Responder)’ 실험을 거듭해 군집 드론을 몇 초 안에 무력화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국 육군도 2024~2025년 래피드 디스트로이어(Rapid Destroyer)라는 전파 기반 지향성 에너지 무기를 시험해 다수 드론을 동시에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사례는 HPM 무기가 더 이상 연구실의 기술이 아니라 실제 전장에서 요구되는 드론 대응 무기체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각국이 HPM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2024년 4월 이란의 대규모 드론·미사일 공습 당시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 냈지만 하루 방어비용이 1조8000억 원에 달했다.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가 수십~수백 대의 샤헤드136 드론을 하루 단위로 투입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보다 훨씬 비싼 미사일을 쏘아 올려 막아야 한다. HPM 무기의 발사비는 수 달러 수준이다. 물리적 형태의 ‘탄약’이 필요 없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의 경제성은 군사적으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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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M 무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원리는 단순하지만 파괴력은 치명적이다. 특정 주파수 대역의 강한 마이크로파를 조사하면 드론 내부 회로에 과도한 유도전류가 발생한다. 회로기판, 배선, 안테나, 반도체 소자에 순간적인 전자기 충격이 가해지면 비행제어 컴퓨터가 오작동하거나 완전히 마비된다. 기체는 멀쩡해도 ‘전자두뇌’가 꺼져 버리는 순간 드론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HPM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핵전자기 펄스(EMP)와의 차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두 기술은 혼동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념이 다르다. EMP는 핵폭발이 만들어 내는 나노초 단위의 거대한 전자기 충격으로 수백 ㎞ 규모의 전력망과 통신망을 마비시킬 수 있다. HPM은 특정 표적에만 지향적으로 에너지를 쏴 드론·순항미사일 등 움직이는 표적을 ‘선택적으로’ 무력화하는 전술무기다. EMP가 도시 전체를 공황상태로 만드는 전략무기라면 HPM은 군집 드론을 ‘정밀하게 잘라 내는 메스’에 가깝다.
이처럼 강력해 보이는 HPM 무기에도 한계는 있다. 만능이라고 보기는 어렵기에 논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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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논란은 주파수 의존성이다. HPM 무기의 효과는 드론 내부 회로의 구조, 케이블 길이, 부품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표적 회로의 ‘공진 주파수’를 정확히 맞춰야 유도전류가 극대화되는데, 구조가 바뀌면 동일한 무기가 동일한 효과를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 즉 특정 설계에는 치명적이지만 모든 드론에 ‘보편적으로’ 강력하다는 보장은 없다.
두 번째는 전자파 차폐기술이다. 군용 드론이나 고급 상용 드론은 이미 금속 하우징, 차폐 케이블, 필터링 구조를 적용해 전자기파 간섭에 대비하고 있다. 차폐 성능이 높아질수록 HPM의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부수 피해와 전력·기동성 문제다. 개활지·전장에서는 장점이지만 민간 지역에선 통신장비·항공전자·의료기기 등에 원치 않는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출력이 높을수록 전력 소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차량 탑재형·고정식 플랫폼의 설계를 제약한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HPM을 ‘강력하지만 상황 의존적인 무기’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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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직 HPM 무기를 전력화하진 않았지만 핵심적인 기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질화갈륨(GaN) 전력증폭소자를 국산화해 고출력 전자파를 안정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RFHIC·웨이비스 등 국내 기업들도 GaN 기반 고출력 증폭기를 군용 레이다와 드론 대응 장비에 공급하면서 HPM 구성요소를 축적해 왔다. 아직 완전한 체계 개발 단계에 이르진 않았지만 한국은 고출력 전자기파 무기체계 분야에서 중요한 출발선을 갖고 있는 셈이다.
각국은 가까운 미래의 위협인 군집 드론을 일시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경제성·지속성·속도 측면에서 HPM 기술을 주목한다. 특히 적응형 주파수 기술, 인공지능(AI) 기반 표적 분석, 소형 고효율 전원 기술이 더해진다면 다양한 형태의 드론과 순항무기에 대응하는 HPM 체계가 등장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현재 완성된 현실이 아니라 기술 발전이 열어 갈 수 있는 방향이란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HPM은 레이저 무기와 함께 미래 ‘지향성 에너지 방어망’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레이저가 단일 표적을 정밀하게 제거하는 ‘칼’이라면 HPM은 군집 표적을 한 번에 무력화하는 ‘전술적 번개’에 가깝다. 두 기술이 함께 전장에 배치되면 소형 드론에서 순항미사일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공중 위협에 더 유연하고 경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론 전쟁이 일상이 된 시대 보이지 않는 전자기장이 하늘의 위협을 지워 버리는 새로운 전장의 문이 열리고 있다.
다음 회에선 4년을 지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드론과 AI의 역할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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