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민주·애국의 길을 걷다] 어머니 안녕! 안녕…소년은 내달렸다, 그리움을 넘어 두려움을 건너

입력 2026. 02. 10   16:43
업데이트 2026. 02. 1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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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민주·애국의 길을 걷다
포항 - 학도병과 해병에게서 배우는 용기

포항지구전투·장사상륙작전 6·25전쟁 ‘최후의 보루’ 낙동강 벨트 지킨 학도병들의 숨결 오롯이
열일곱 청춘의 호주머니에는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 깊은 바다에서 돌아오면 다시 태우겠노라 ‘떠나지 않는 배’ 
그들의 무기는 총도 수류탄도 아닌 ‘용기’…오늘로 이어져 한 치의 물러섬 없는 ‘해병의 도시’로

 

타인 혹은 조국을 위해 거리낌없이 몸을 던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호국의 가치를 찾기 위한 두 번째 목적지 경북 포항시에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내딛는 한 걸음,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소중한 이를 지키겠다는 용기였다. 글=맹수열/사진=한재호 기자

경북 포항시와 맞닿아 있는 영덕군 장사리에 건립된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돌격하는 학도병 동상 뒤로 작전 당시 이들이 탑승했던 상륙함(LST) 문산호를 본떠 만든 기념관이 보인다.
경북 포항시와 맞닿아 있는 영덕군 장사리에 건립된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돌격하는 학도병 동상 뒤로 작전 당시 이들이 탑승했던 상륙함(LST) 문산호를 본떠 만든 기념관이 보인다.



최고의 무기는 ‘용기’…‘학도병의 도시’에서 만난 호국영웅

포항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용기의 도시’다. 6·25전쟁 당시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낙동강 벨트의 동쪽 끝인 포항은 앳된 얼굴로 분연히 총을 잡고 일어섰던 학도병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은 바다에서 총탄을 뚫고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그 누구보다 용기가 필요한 해병이 주둔하는 ‘해병의 도시’로 그 정신을 이어 가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포항과 인근 지역엔 다른 곳보다 유독 학도병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시설이 많다. 포항지구전투가 벌어졌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지에 위치한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과 ‘전몰학도 충혼탑’이 대표적이다.

전승기념관은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담한 규모로 지어졌다. 하지만 학도병 참전용사의 생생한 증언 영상을 볼 수 있는 전시물, 실제 학도병들의 물품 등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아직 어린 얼굴이 남은 전시학생증에서 그들의 나이를 세삼 체감할 수 있었다.

기념관 입구에 세워진 푯말도 의미심장하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학생들. 소총도 수류탄도 아닌 그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는 용기, 목숨을 나라 구하는 데 쓰겠다는 용기,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 과연 같은 나이의 나는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기념관 옆 쪽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전몰학도 충혼탑과 ‘포항지구 전적비’가 나온다. 충혼탑은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인 1957년 생존 학도병들이 중심이 돼 세워진 유서 깊은 조형물이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충혼비에 경의를 표하고 내려오면 국군과 학도병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인상적인 동상이 보인다. 보통의 전적지에서 보기 힘든 ‘학도병의 도시’ 포항의 정체성이 담긴 조형물이다.

동상 옆에는 학도병 이우근이 어머니께 보낸 편지, 이른바 ‘부치지 못한 편지’가 새겨져 있다. 동성중 3학년이었던 이우근은 1950년 8월 포항지구전투에 참전했을 때 이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은 채 전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17세. 편지는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편지에는 소년이 느낀 전쟁에 관한 궁극적 의문과 죽음의 두려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특히 편지 말미에 담긴 삶을 향한 강한 의지와 안타까운 결말은 만감을 교차하게 만든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포항지구 전적비 옆에 세워진 동상. 국군과 학도병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포항지구 전적비 옆에 세워진 동상. 국군과 학도병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죽음을 뛰어넘는 용기…학도병의 혼은 바닷속에


포항시와 북쪽 영덕군의 경계, 최근 드라이브 명소로 꼽히는 장사해수욕장 앞에는 ‘떠나지 않는 배’가 서 있다. 1950년 9월 학도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독립 제1유격대대를 싣고 장사리 해안에 내렸던 상륙함(LST) 문산호를 본떠 만든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다. 평일 오후임에도 이곳은 인근 부대 장병, 가족 단위 관람객으로 꽤 북적였다. 지난해 7월 5년 만에 리뉴얼한 뒤 지역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기념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기념관에서 장사상륙작전과 관련된 거의 모든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이 왜 장사리로 향했는지,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우리가 왜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지 등. 가족과 함께 전시물을 유심히 살피던 30대 최성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 근처에서 나고 자라 육군을 다녀왔는데도 장사상륙작전에 관해 자세히 설명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아들과 함께 들러 장사상륙작전에 대해 알고 나니 호국영령들의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입대했을 때의 저보다 훨씬 어린 분들인데,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장사상륙작전은 대규모 연합군이 투입된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 격이었다. 대부분의 주력이 인천으로 향한 사이 적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계획된 이 작전의 중심엔 학도병이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에 비해 현저히 열세임에도 학도병들은 굴하지 않았다. 꿋꿋이 임무를 완수하긴 했지만 깊은 바닷속에 묻힌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열중하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7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죽음을 각오했던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점멸하는 국화꽃 조명을 바라보며 그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포항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고지에 세워진 전몰학도 충혼탑.
포항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고지에 세워진 전몰학도 충혼탑.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에 전시된 전시학생증.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에 전시된 전시학생증.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에 마련된 국화 조명 ‘추모의 빛’.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에 마련된 국화 조명 ‘추모의 빛’.

 


영웅이 잠든 땅, 계절을 잊다

포항 인근 국립영천호국원에는 전쟁 당시 그 누구보다 용감하게 맞서 싸운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현재 이곳에 안장된 5만6000여 위 가운데 참전용사는 3분의 2가량인 3만7000여 위를 차지한다. 가지런히 배치된 묘역은 소속 군·계급과 상관없이 모셔져 있다. 헌신과 희생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평등함을 시사하는 듯하다. 한창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임에도 많은 이가 놓고 간 형형색색의 꽃은 묘역을 ‘계절을 잊은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묘역 앞에는 호국원 인근에서 벌어진 영천대첩을 기억하기 위한 거대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전투에 참가한 국군 7·8사단을 기리는 비석과 전투를 이끌었던 8사단장 이성가 장군의 동상, 사단 마크를 형상화한 조각 등 여러 조형물이 있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밀려오는 적 전차에 맞서 개인화기로 사격하는 국군을 묘사한 부조였다. 절대적 열세에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던 그날의 기억이 조각에 담겨 있었다.

호국원 바로 옆에는 ‘영천전투 호국기념관’도 건립됐다. 처연한 전투 끝에 승리를 거머쥔 영웅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곳이다.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면 전자추모록을 작성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방문객의 사진과 친필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어린이·청년이 대부분이었다. 어깨동무한 청소년들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나라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문구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장사상륙작전에 참가한 학도병들이 문산호에서 내리고 있다.
장사상륙작전에 참가한 학도병들이 문산호에서 내리고 있다.

 

국립영천호국원 묘역을 물들이고 있는 추모 화환들.
국립영천호국원 묘역을 물들이고 있는 추모 화환들.

 

해병대 포항역사관에 전시된 부대기들.
해병대 포항역사관에 전시된 부대기들.



해병, 용기를 이어 가다

학도병이 ‘과거의 용기’라면 ‘지금의 용기’는 해병대가 맡고 있다. 포항은 ‘해병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해병대의 존재감이 큰 곳. 포항에 주둔 중인 해병대1사단은 해병대, 사단이 걸어온 길을 잊지 않기 위해 ‘해병대 포항역사관’을 운영 중이다. 1968년 해병대 기념관으로 개관한 뒤 1981년 해룡기념관을 거쳐 1999년 재개관한 포항역사관은 해병대 창설부터 지금에 이르는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군 역사관 중 하나다.

역사관은 영내에 위치해 있지만 민간인도 신청하면 언제든 출입해 관람할 수 있다. 역사관 운영을 맡은 강지원 군무주무관은 “민간 방문도 꽤 꾸준하다”고 말했다. “연초, 호국보훈의 달 등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는 더 많은 분이 찾아옵니다. 주로 해병대 예비역이나 지역주민이 방문하시죠. 부대 개방 같은 민·군 화합 차원의 행사 때도 많은 분이 오십니다. 해병대의 역사이자 얼굴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해병대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30년 리모델링해 다시 한번 도약을 꿈꾸고 있다는 강 주무관은 환한 얼굴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포항과 그 일대를 둘러싼 전사적지는 처절한 전투를 기억나게 하는 장소이지만, 한편으론 대부분 관광명소 역할도 한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의 경우 최근 각광받는 미디어아트 등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장치를 정성껏 배치해 호평받고 있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에서 셀카가 벽면에 투영되는 미디어파사드를 배경으로 천진난만하게 사진을 찍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곳을 둘러봤는지 궁금해졌다. 보잘것없는 총 한 자루에 기대 적에게 돌격하던 학도병은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앞서 만났던 최성현 씨의 아들 열 살 최요한 군의 대답은 의미심장했다.

“저보다 조금 큰 형들이라고 하는데, 나라를 위해 싸우셨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대단해요. 저도 씩씩하게 자라 나라를 지키는 용감한 어른이 될 거예요.” 마음속을 먹먹하게 했던 ‘과연 나는?’이란 질문의 답을 어린이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70여 년 전 용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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