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겨라…묵묵한 발걸음 밤을 지배하다
무게를 견뎌라…수호신,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인왕산·북악산 30㎞ 코스 종주
혹한에도 대열 흐트러짐 없어
실제 임무수행 공간 몸으로 확인
대한민국 수도 수호 자부심 고취
정직한 훈련 속 전우애도 쌓아
깊은 밤이 내려앉은 서울의 성곽길 위로 긴 행군 대열이 이어진다. 30㎏ 완전군장을 짊어진 장병들은 인왕산·북악산 능선을 따라 묵묵히 발걸음을 옮긴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빛을 벗 삼아,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수호신부대는 혹한기 훈련의 하나로 무박 2일 야간 전술행군을 실시했다. 서울 시민과 국민을 굳건히 지키기 위한 임무수행 능력을 배양하는 것. 수호신부대 장병들이 겨울 찬바람과 싸우며 묵묵히 전진한 이유다. 글=이원준/사진=이윤청 기자
‘살아 방패! 죽어 충성!’ 힘찬 구호로 시작
“행군은 정직한 훈련입니다. 여러분에게 부여된 무게를 오롯이 느끼길 바랍니다. 모두 안전하게 다녀옵시다. 이상!”
지난 5일 오후 6시50분.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수호신부대 연병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든 부대원이 완전군장을 갖추고 대열을 이룬 가운데 이상호(대령) 부대장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이 부대장도 완전군장을 메고 대열에 합류했다.
“살아 방패! 죽어 충성!” “행동으로 충성하자!”
곧이어 힘찬 구호가 연병장을 울렸다. 훈련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행군 완주를 다짐하는 장병들의 외침이었다. 오후 7시, 선두 제대를 시작으로 수호신부대 장병들이 부대 정문을 나섰다. 대열의 앞뒤에는 인솔자가 배치됐고 차량이 오가는 교차로마다 안전통제요원이 자리를 지켰다. 부대를 떠나는 장병들의 표정은 비교적 밝아 보였다. 그러나 이번 행군이 절대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수호신부대의 슬로건은 ‘수도 서울을 지키는 가장 강한 힘’이다. 부대 마크에는 동서남북을 굳건히 지키는 성벽,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방패가 있다. 서울의 수호신으로서 시민의 안녕과 평화를 지킨다는 의미가 여기에 담겨 있다.
육군 최정예를 자부하는 만큼 행군 훈련도 난도가 높다. 부대를 출발해 인왕산, 북악산을 종주하는 30㎞ 코스가 이들 앞에 펼쳐졌다. 평탄한 행군로가 아닌, 사실상 산악행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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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멈추지 않고 전진
짧은 도심 구간을 벗어나 인왕산과 북악산 산악로에 접어들자 주변은 빠르게 고요해졌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군화가 돌을 딛는 둔탁한 마찰음이 밤공기를 채웠다. 안전을 위한 경광봉 불빛이 대열을 따라 길게 늘어섰다. 어둠 속 능선을 따라 이어진 작은 별자리 같았다.
계단이 시작되자 대열의 호흡이 달라졌다. 발걸음은 짧아지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30㎏ 군장의 무게가 계단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온몸으로 전해졌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모두 묵묵히 전진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수풀이 사라지고 사방으로 시야가 트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서울 도심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검은 산 능선 아래 수만 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도로 위 차량의 불빛은 강물처럼 흐르고, 멀리 남산타워가 붉은 빛을 띠며 밤하늘 위에 떠 있다. 행군로는 그 빛의 물결을 내려다보며 묵묵히 능선을 따라 이어졌다.
누군가는 말없이 도시를 바라봤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에 집중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걷고 있는 이 길 아래에 지켜야 할 시민들의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행군은 단순한 체력훈련이 아니다. 작전지역 일대를 직접 걸으며 지형을 익히고 작전환경을 몸으로 이해하는 것이 이번 훈련의 핵심이다. 인왕산과 북악산은 수호신부대 장병들이 실제 임무를 수행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임대대 윤이준(대위) 중대장은 이번 훈련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수도 서울을 절대 사수하겠다는 수호신부대의 사명을 다시 느낍니다. 특임대대의 임무는 최근 대테러에 더해 경호·경비 임무까지 확대됐습니다. ‘수도 서울 절대사수’라는 사명감으로 변화된 환경 속에서, 변함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수호신부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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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응원 받으며 완주 목표 향해…
가파른 경사로를 만날 때마다 대열은 자연스럽게 침묵에 잠겼다. 서로의 숨소리와 장비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일정한 리듬처럼 이어졌다.
이따금 마주친 등산객들은 처음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군인들이 훈련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고생 많으십니다. 힘내세요!”
짧은 응원의 한 마디가 대열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장병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어둠 속 능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대열 속에는 처음 완전군장 행군을 경험하는 장병도 있었다. 장갑차 조종수 정유진 일병은 숨을 고르며 짧게 소감을 전했다.
“완전군장으로 장거리 행군은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소대장님과 전우들이 계속 격려해 줘서 끝까지 버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는 능선 아래로 펼쳐진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이었다.
“서울에서 살던 곳들이 보이니까 신기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친구들을, 이 도시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부심이 큽니다. 이번 행군을 완주하면 군 생활에 큰 자신감이 생길 것 같습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다시 군장을 고쳐 메고 대열에 합류했다. 행군은 다시 묵묵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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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오르는 컵라면 덕에 다시 힘내서 출발
북악산 깊은 곳에 자리한 중간 반환점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오후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장병들은 군장을 내려놓고 따뜻한 컵라면을 받았다.
차가운 밤공기 속 피어오르는 김이 장병들의 얼굴을 감싼다. 뜨거운 라면 국물을 들이켜자 굳어 있던 몸이 서서히 풀린다.
휴식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장병들은 다시 군장을 고쳐 멨다. 아직 절반의 길이 남아 있었다.
부대로 복귀하는 길, 혹한의 바람 속에서도 대열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행군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는 훈련이자 전우와 함께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이다.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이어간 행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굳건한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지는 시간이었다. 수호신부대 장병들의 발걸음은 그렇게 이튿날 새벽을 향해 끝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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