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며 들다”

입력 2026. 02. 09   14:45
업데이트 2026. 02. 09   15:37
0 댓글

40대 초반의 민간인이었던 나는 뜻밖의 계기로 군에 들어왔다. 교육학 박사학위를 마친 뒤 대학 임용 자리를 찾던 중 집 근처 ‘사관학교’의 교수 채용 공고를 보고선 큰 고민 없이 지원했다. 그곳이 군부대란 사실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내린 선택이었다.

임용 후 첫날 첫 일정은 ‘학교장님 신고’였다. 그간 해 본 ‘신고’라곤 10여 년 전 남편과 주민센터에서 했던 ‘혼인신고’가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신고’를 하라니 잠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40년을 민간인으로 살아온 터라 ‘신고’란 말이 너무 낯설었다. 운동장은 ‘연병장’이 되고, 말끝이 ‘다·나·까’로 정리되는 문화가 낯설기만 했다. 익숙지 않은 언어와 문화 속에서 마치 어른 옷을 입은 아이처럼 어색했다.

그럼에도 이곳에 적응하려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지키고, 체력단련 시간엔 난생처음 5㎞ 뜀걸음에 도전했다. 어느 날 간부 식당에서 만난 주임원사님이 “적응 잘하시네요. 원래 여기 계셨던 분인 줄 알겠어요”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칭찬인지 농담인지 모를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군에 왔음을 가장 실감한 순간은 첫 ‘당직’이었다. 민방위복을 입고 텅 빈 건물을 지키는 동안 지난날의 평온한 밤들이 누군가의 쉼 없는 헌신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단 한순간의 공백도 없이 나라를 지켜 온 군인들. 같은 시간, 어딘가에서 함께 밤을 지새울 그들을 떠올리며 묘한 동질감과 감사함을 느꼈다. 그 조용한 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임용 몇 달 뒤 4학년 생도들의 임관식을 지켜봤다. “별보다 빛나는 (소위의) 다이아몬드”라는 학교장님의 말씀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들의 지난 4년을 가까이서 지켜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시간의 무게와 가족의 마음이 함께 전해지는 듯했다.

임용 1년 차가 됐을 무렵 부대 안을 뛰다가 만난 교수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군(軍)며드셨군요.” 그렇다. 어느새 군에 스며들었다. 여전히 낯선 것도 많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명감과 생도들의 반짝이는 눈빛은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만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며 이곳에서의 시간이 조용히 나 자신을 바꾸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떠나보낸 이들의 뒷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떠나는 이들을 붙잡을 순 없었고, 새로 오는 이들을 미리 알 수도 없었다. 이곳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고, 오가는 발걸음은 늘 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가볍게 지나가진 않았다. 함께한 짧은 순간 속에 서로를 향한 배려와 온기가 남아 있었고,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었다.

반복되는 이별과 만남 속에서도 이곳에서 늘 같은 임무를 수행했고, 어느새 여기에 마음의 뿌리를 내렸다. 군 교수로서 맞이한 첫해. 엉겁결에 시작된 군 생활이었지만, 이젠 기꺼이 이어 가고 싶은 나의 오늘이 됐다. 앞으로도 ‘나라의 일원’답게 맡은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충성!

김은예 전문군무경력관 가군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육학 교수
김은예 전문군무경력관 가군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육학 교수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