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를 만나다 >>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속 K팝
트로피 거머쥔 케데헌 ‘골든’ 팀부터
로제·브루노 마스 오프닝 공연까지 화제
신인 캣츠아이는 후보 지명만으로 성과
스페인어로만 구성된 앨범 ‘최고상’ 수상
현상·서사 공존하는 현실 음악세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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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그러나 성과는 있었다. 지난 2일(한국시간) 음악계의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그래미 어워드에서 K팝은 최초의 그라모폰 트로피를 받았다. 2025년 전 세계를 강타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이자 걸그룹 헌트릭스로 분한 이재, 레이 아미, 오드리 누나가 노래한 ‘골든(Golden)’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영화, TV, 비디오게임과 같은 비주얼 미디어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음악에 수여되는 이 상은 그래미 프라임 타임에 시상이 진행되는 주요 부문은 아니다. 하지만 1988년 처음 신설된 이후로 ‘인어공주’ ‘알라딘’ ‘포카혼타스’ ‘라푼젤’과 같은 디즈니의 대표작과 ‘필라델피아’ ‘타이타닉’ ‘드림걸즈’ 등 굵직한 작품의 음악이 트로피를 받았으니 그 권위가 작다고 볼 순 없다. 이날 그래미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피콕 시어터에는 ‘골든’을 창작한 이재, 24, 프로듀싱 팀 아이디오(이유한·곽중규·남희동)가 참여해 트로피를 받았다. 프로듀싱 팀이 소속된 더블랙레이블의 수장 테디는 현장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프로듀서 24가 그를 호명하며 존재감을 증명했다.
총 95개의 경쟁 부문에 트로피를 수여하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한국인의 수상은 이번이 최초가 아니다. 과거 엔지니어 황병준, 성악가 조수미가 그래미상을 받았으나 그래미 어워드에서 K팝이란 이름으로 창작가들이 트로피를 가져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미국 작품이며, 헌트릭스 멤버들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모두 미국 국적을 갖고 있어서다.
지난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K팝인지, 아닌지 갑론을박이 뜨거웠을 정도로 아직 우리에게는 한국인과 한국어 가사가 드문 음악을 K팝으로 불러야 할지에 관한 판단이 확실히 서지 않았다. 이번 그래미 어워드 수상을 바라보는 전 세계 매체는 일관된 시선으로 역사상 최초의 K팝 수상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K팝의 ‘K’가 국적의 의미로부터 음악을 기반으로 한 종합 엔터테인먼트와 이를 완성하는 조직적 체계를 상징하는 인증마크로 확장됐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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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그래미 어워드 후보로 오른 K팝 작품을 보면 세계 시장에서 K팝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상상의 영토를 확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골든’은 방탄소년단이 후보에 올랐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부문과 더불어 그래미 어워드의 4대 본상 부문 중 하나인 ‘송 오브 더 이어(Song of the Year)’ 부문에도 이름을 올렸다. 같은 부문에는 블랙핑크의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합을 맞춘 글로벌 히트곡 ‘아파트(APT.)’가 노미네이트됐다. ‘아파트’는 또 다른 본상 부문이자 곡에 참여한 모든 제작진을 치하하는 ‘레코드 오브 더 이어(Record of the Year)’ 부문에도 올랐다. ‘올해의 신인’에는 걸그룹 캣츠아이가 후보에 지명됐다. 하이브 아메리카가 현지 오디션에서 선발한 글로벌 걸그룹으로, 한국인 멤버가 단 한 명뿐이어서 K팝 논쟁에 불을 지폈던 팀이다.
큰 기대에 비해 본 시상식에서 수상은 없었다. 올해의 신인 부문은 캣츠아이의 후보 지명부터가 대단한 성과란 평가가 많았던 만큼 2018년 이후로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독식하는 흐름에 맞춰 신예 R&B·소울 가수 올리비아 딘이 트로피를 가져갔다. ‘레코드 오브 더 이어’는 지난 그래미 어워드에서 레코드와 송 두 부문을 가져간 래퍼 켄드릭 라마가 글로벌 히트곡 ‘루터(luther)’로 2연패에 성공했다. 의아한 부분은 ‘송 오브 더 이어’다.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가 2024년 5월 발표한 정규앨범 수록곡 ‘와일드플라워(Wildflower)’로 수상했다. 음악의 완성도와 작사·작곡의 재능을 떠나 명확하지 않은 규정으로 인해 논쟁이 있었다.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에서 영화 ‘위키드’의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가 상을 받은 것도 의외의 결과다. 이미 유명한 뮤지컬 인기곡이어서다.
혹자는 이런 결과가 과거 ‘화이트 그래미(White Grammys)’라고 불릴 정도로 인종과 장르에서 편향적이었던 그래미의 보수적 성향이 드러난 사례라고 혹평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는 최고의 영예이자 가장 마지막 차례에 시상하는 ‘앨범 오브 더 이어(Album of the Year)’의 주인공으로 푸에르토리코 출신 슈퍼스타 배드 버니를 선택했다. 68년의 그래미 역사상 최초로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만 노래한 앨범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제68회 그래미 어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상과 서사의 대결’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언더독을 넘어 전 인종과 연령이 즐기는 문화로 팝 시장에 역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K팝과 라틴음악, 그래미 어워드에서 오래도록 인정받지 못한 힙합과 R&B 장르가 현시대의 지배력을 앞세워 권위에 도전했다. 반대편에는 그래미 어워드가 견지했던 미국의 음악, 팝 음악 역사의 계승, 음악을 통한 극복과 인간 승리의 키워드가 있었다. 그래미 어워드 수상 결과를 결정짓는 레코딩아카데미 회원들은 이에 ‘골고루’를 선택했다. 앨범과 레코드 부문에선 현상을, 송과 신인 부문은 서사를 계승했다. 수많은 가치와 각 집단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오늘날 절대 강자가 없는 음악세계의 초상이다. 과연 K팝은 다음 시상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배드 버니가 최초의 기록을 쓴 만큼 가능성은 충분하다. 더는 그래미 어워드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빌보드 차트에서 K팝의 활약이 낯설지 않은 만큼 이미 K팝은 그 존재감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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