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Ⅲ>> 아프리카-에티오피아 ③
군부, 부패·불평등 척결 외치며 쿠데타
민생 더 피폐…반발 국민은 고문·처형
경제·교육 수준 높았던 국가 급속 추락
민주주의 되찾았지만 이미 시스템 붕괴
소말리아와 영토분쟁 때 외세 지원 화근
승전하고도 군사 주권 소련으로 넘어가
에티오피아는 광대한 영토와 엄청난 자연자원을 보유한 나라다. 하지만 수십 년째 세계 최빈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랜 기간 대외전쟁, 내전, 자연재해, 정권 부패 등을 겪은 에티오피아는 극도로 피폐해졌다. 이런 고난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 ‘적색테러 박물관’이다.
‘커피의 나라’ 에티오피아의 현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발상지다. 커피(coffice)의 어원도 에티오피아의 커피 산지 ‘카파(kaffa)’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노상 곳곳에서 커피를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자가 만난 하블(23) 씨도 노상 커피를 팔고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에 갈 형편이 못 돼 곧바로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은 가정부, 노점상이 됐다. 가정부는 급여 없이 숙식 해결로 만족해야 한단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이다.
하블 씨는 한인식당 앞에서 커피를 팔았다. 하지만 길거리 청년들이 그녀를 괴롭혔고, 보다 못한 한국인 H씨가 그녀를 안전한 한인식당 안에 커피점을 차리도록 배려했다. 하블 씨가 끓여주는 커피값은 200원 내외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1000원을 건네면서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가끔 한인 식당의 허드렛일을 도우며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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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테러 박물관’의 에티오피아 현대사
아디스아바바 한복판 ‘적색테러박물관(Red Terror Martyrs’ Memorial Museum)’의 겉모습은 작은 건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에티오피아가 겪어야 했던 피눈물 나는 역사가 펼쳐진다. 작은 전시관이지만 왜 에티오피아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게 정리했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전통적인 왕조체제를 무너뜨렸다. 가뭄·기아·빈부격차 등 고질적인 사회 병폐가 원인이었다. 새로 등장한 정권은 ‘더그(Derg)’란 이름의 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들은 부패한 체제와 불평등을 바로잡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쟁과 경제파탄으로 국민들은 더 고통 속에 빠져들었다. 체제 불만을 표시하면 비밀경찰에 의해 고문을 받고 처형당했다. 전시관에는 희생자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다. 반대편에는 찢어진 옷가지, 고문 도구들이 진열돼 있다. 1991년 5월 28일, 에티오피아는 기나긴 암흑기를 끝내고 다시 민주정권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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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실패 재기불능의 나라로 전락
쿠데타 이전 에티오피아는 부국까지는 아니어도 아프리카에서 국가 정체성이 확고한 전통 있는 나라였다. 커피·농산물 수출도 많았고, 아프리카 평균보다 1인당 GDP와 교육 수준도 높았다. 6·25전쟁에 참전할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존재감도 있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은 국가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토지를 국유화했고 은행·상공업·유통망까지도 통제했다. 시장가격 체계가 무너지고 농업생산량도 급감했다.
개인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집단농장에서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었다. 군사정권 17년 내내 안팎으로 전쟁이 계속됐다. 군사정권은 에리트레아 독립전쟁, 소말리아 전쟁으로 국가 예산의 60%를 군사비에 충당했다. 이 와중에 교사, 기업인, 과학자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해외로 탈출하면서 국가 운용능력은 급속히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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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덴 전쟁 승전탑 뒤의 불편한 진실
아디스아바바에는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에티오피아·소말리아 영토분쟁으로 발발한 오가덴(Ogaden)전쟁을 기념하는 승전탑이 있다. 1977년 에티오피아는 북부 에리트레아와 전쟁 중이었다. 이 틈을 노려 인접국 소말리아는 옛 영토 오가덴 지역을 되찾겠다고 침공했다. 에티오피아는 즉각 북부전선에서 주 병력을 오가덴으로 이동시켰다. 소련은 군사 장비를, 쿠바는 1만7000명의 병력을 에티오피아에 보냈다. 결국 소말리아군은 초기에 점령했던 오가덴 지역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철수했다. 이후 소말리아는 친미 국가, 에티오피아는 친소 국가로 변했다.
그 영향은 승전탑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탑 하단에는 레닌모 차림의 군인동상이 있다. 총을 쥐고 전선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좌·우측 대형 비각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나타낸다. 전쟁을 선언하는 정치가, 행진하는 병사들, 곡식을 빻아 군량미를 조달하는 여인이 새겨졌다. 전쟁 이후 에티오피아 군사주권은 소련이 거머쥐었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나라의 자율성은 사라졌다. 승전탑은 ‘승리의 상징’이 아니라 ‘속국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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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류 담배를 공공연하게 판매
아디스아바바 외곽에는 제1·2차 세계대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영연방 전몰장병 묘역이 있다. 1940년대 에티오피아는 영국군과 함께 이탈리아군을 내쫓았다. 시내버스로 묘역에 가보려 했지만 노선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도로 건너편에 넓은 승용차 주차장이 있었다. 관리실 청년에게 택시를 찾는다고 하자 대답 대신 길쭉한 담배를 보여주며 피워보기를 권한다. ‘피파(Pipa)’라는 에티오피아 전통 담배라며 피로회복, 기분전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보나마나 마약성분이 섞인 불법 담배다. 공공연하게 마약류를 판매하면서도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관리실을 벗어나 얼른 택시에 탔다. 운전기사에게 확인하니 그 담배는 중독성이 강한 위험물질이라며 자신도 그 청년과 자주 만나지만 ‘피파’는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 에티오피아인은 ‘카트(Khat)’라는 환각성분이 있는 식물을 습관적으로 씹기도 한다. 아디스아바바를 찾는 이들이라면 꼭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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