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땅’ 지정학적 가치 상승…미·중·러 각축장 돼

입력 2026. 02. 06   16:07
업데이트 2026. 02. 0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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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이슈돋보기>>미국의 그린란드 합병 시도와 북극을 둘러싼 강대국 경쟁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 구상
미국 정부가 그린란드 합병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분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가치에 주목, 1기 집권 시기부터 그린란드에 대한 편입을 공언했다. 미국이 지난달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군사력을 동원해 체포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합병 입장을 다시 밝혔다. 그는 미국이 실제로 그린란드 점령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을 천명했다. 

미국은 그린란드 합병 방식으로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덴마크와의 협상을 통한 매입이고 다른 하나는 군사력을 동원한 점령이다. 협상을 통한 매입은 꽤 오래전부터 시도된 방안이다.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그린란드 매입을 검토하거나 제안해 왔다. 미국의 역사에서 그린란드 매입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1867년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 매입에 성공한 뒤 윌리엄 시워드 당시 국무장관은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매입을 검토했다. 당시 그린란드 매입의 주요 배경은 알래스카와 마찬가지로 지정학·경제적 가치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시워드 장관의 검토는 실제 덴마크에 대한 공식적인 매입 제안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미국의 공식 매입 제안은 냉전 초기인 1946년 이뤄졌다.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덴마크 측에 그린란드 매입금으로 1억 달러를 제안했다. 당시의 매입 시도에는 미·소 대결 가능성 등 군사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린란드는 소련이 북극 상공을 통해 미국을 공격하려 할 때 감시 및 요격 등을 수행할 방공·미사일방어 기지 구축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나 덴마크는 그린란드 매각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 그린란드에서의 해당 기지 건설 및 운영 권한을 부여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그린란드 매입 추진은 이와 다소 차별되는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강대국(미·중/미·러) 간 경쟁 격화로 인한 그린란드의 군사 안보적 효용성 강화,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 항로가 개방되는 북극의 지정학적 재발견 등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매입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은 여러 차례 매입을 제안했지만 그때마다 덴마크는 거절해 왔다. 그린란드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자치권을 가진 그린란드 주민들이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는 점 역시 미국이 넘어서야 할 난관이다.

이렇게 희박한 성사 가능성을 가진 매입과 함께 거론되고 있는 두 번째 방안은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 점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매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린란드에 대한 강한 합병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린란드 획득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우선 과제며, 미국이 적대국을 억제하는 데 필수 수단이라는 이유다.

 미국의 군사행동 시사로 같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과의 군사적 갈등을 빚는 상황도 벌어졌다. 

미국이 그린란드를 대상으로 군사력을 사용한 (강제)합병 가능성을 시사하면 나토 회원국은 덴마크 주도 ‘북극 인내 작전(Operation Arctic Endurance)’으로 명명된 군사훈련으로 대응했다. 나토가 생긴 이후 75년 동안 나토 동맹국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런 갈등은 유럽의 동맹 체제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이 나토의 파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덴마크군 장병들이 지난해 9월 그린란드 캉겔루수아크에서 나토 회원국 군과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덴마크군 장병들이 지난해 9월 그린란드 캉겔루수아크에서 나토 회원국 군과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그린란드에 대한 지정학적 가치 인식

그린란드가 분쟁 지역이 된 직접적인 배경은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는 면적이 216만㎢로 한반도의 10배 크기다. 원래 그린란드는 전체 면적의 80%가 빙하로 덮인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나 최근 기후 온난화로 북극 지역의 활용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정학적 가치가 상승했다. 북극항로가 해빙으로 인해 개방되는 기간이 늘어났다는 점 역시 그린란드가 주목받는 요인 중 하나다. 그린란드는 미국과 유럽 사이에 있어 이른바 ‘GIUK 갭(Gap)’이라고 불린다.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영국 사이의 해상 통로라는 뜻이다. 그린란드는 유럽과 미국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다.

미국은 이런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가치에 주목해 왔다. 미국은 그린란드에 피투픽 우주기지를 배치해 운영해 왔다. 또 골든 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피투픽 기지의 현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골든 돔 프로젝트는 우주 기반의 미사일 방어체계로 피투픽 기지가 이를 지원하는 곳으로 논의됐다. 미국이 미래 우주 전략을 구축하는 데 있어 그린란드의 확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린란드가 분쟁 지역으로 부상하게 된 배경 중 하나는 풍부한 천연자원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그린란드에 매장된 천연자원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린란드에 매장된 희귀광물이 전투기, 레이저, 전기차, MRI 등 다양한 첨단산업에 필수라고 판단했다. 중국이 희귀광물 생산과 공급망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그린란드의 희귀광물이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을 완충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참석을 계기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참석을 계기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극을 둘러싼 강대국 경쟁 심화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 구상은 북극 지역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러시아와 중국이 들어올 것이며, 덴마크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극에서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이 존재하고 중국이 북극항로로 진출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 구상은 러시아, 중국, 미국 등 강대국 경쟁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러시아는 북극에 대한 높은 전략적 가치를 부여해온 국가다. 러시아는 2014년 북극합동전략사령부(Arctic Joint Strategic Command)를 창설하고, 북극항로에 배치된 군사 시설을 보호하도록 했다. 북극합동전략사령부의 새로운 구성요소로 북극여단(Arctic Brigade)을 창설하기도 했다. 러시아 북부함대(Northern Fleet)는 북극합동전략사령부의 지휘를 받아 러시아 북극 지역 국경을 보호하고, 영유권을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나아가 북극에서 나토의 군사력을 단계적으로 제거하는 데 목표를 뒀다.

한편 중국은 ‘빙상 실크로드’ ‘북극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북극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일대일로 정책의 확장으로 북극항로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러시아의 북해 항로에 기반한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기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항로보다 단거리다. 중국은 북극해 해빙으로 인해 북극항로의 가치를 활용하고자 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4년 ‘북극 강국’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북극항해장비위원회와 같은 북극 관련 국제기구에 가입하는 등 북극 지역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북극해에 인접한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이들 국가에 광산 및 사회간접자본 투자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합병 구상은 북극 지역의 지정학적 가치 상승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극 빙하의 해빙으로 북극항로가 개방될 것으로 기대되고, 북극 지역에서 천연자원 접근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조기경보체계, 미사일 방어, 전략핵 잠수함 운용 등이 북극 지역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북극 지역의 지정학적 가치 상승은 강대국 사이의 군사력 경쟁 양상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이재준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재준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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