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로 덮은 폭정… 콜로세움, 몰락의 무대가 되다

입력 2026. 02. 06   15:24
업데이트 2026. 02. 08   13:32
0 댓글

전쟁과 영화>> 글래디에이터 II (2024)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폴 메스칼(루시우스), 덴절 워싱턴(마크리누스), 페드로 파스칼(마르쿠스 아카시우스), 조지프 퀸(게타), 프레드 헤칭거(카라칼라), 코니 닐슨(루실라)

영화 ‘글래디에이터Ⅱ’ 속 결투 장면.
영화 ‘글래디에이터Ⅱ’ 속 결투 장면.

 

검투사 경기는 황제가 시민들에게 베푸는 최고의 시혜였다. 황제들은 대규모 검투사 경기를 개최해 자신들의 관대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중의 관심을 정치적 실정에서 돌리고 그들을 로마라는 제국체제 안에 순응시키려는 통치자들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로마 검투사의 일생』, 배은숙 지음, 글항아리 펴냄 

빵과 서커스, 제국을 지탱한 통치술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는 로마 제국을 유지한 두 가지 요소였다. 황제는 시민들에게 무료 식량을 배급하고 콜로세움에서 검투사 경기를 제공했다. 배고픔과 무료함만 해소되면 민중은 정치에 무관심했다. 검투사 시합은 가장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었다. 피와 환호로 가득 찬 경기장은 제국 통치에 가장 효과적인 장치였다. 

서기 192년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고 아들 콤모두스가 제위를 이어받았다. 오현제 시대가 끝나고 로마는 혼란에 빠졌다. 지혜로 제국을 버텨낸 철학자 황제를 뒤로한 로마는 폭군을 상속받았다. 역사의 아이러니치고는 너무 잔인한 반전이었다. 콤모두스는 콜로세움에서 직접 검투사로 싸우며 광기를 드러냈다. 192년 12월 31일 그는 목욕탕에서 자신의 격투 트레이너였던 나르키소스에게 교살당해 생을 마감했다.

193년은 ‘다섯 황제의 해’라 불린다. 5명의 황제가 연이어 즉위하고 살해됐다. 결국 북아프리카 출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권력을 장악했다. 세베루스는 군인 황제였다. 군대에 막대한 급료를 지급하며 충성을 샀다. 211년 세베루스가 죽자 두 아들 카라칼라와 게타가 공동 황제가 됐다. 하지만 형제는 서로를 증오했다. 212년 카라칼라는 동생 게타를 어머니 품에서 살해했다.

카라칼라는 폭정을 이어갔다. 막대한 군비 지출로 재정은 고갈됐고, 민심은 급속히 이탈했다. 이를 잠재우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더 많은 곡물, 그리고 더 많은 피. 콜로세움은 다시 제국의 중심 무대가 됐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죽어 나갔다. 검투사, 맹수와 싸우는 사형수, 반란 진압 후 끌려온 포로들까지. 죽음은 오락이 됐고, 생명은 통치 비용으로 소비됐다. 관객석을 가득 메운 5만 시민은 환호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II’가 다루는 시대는 바로 이 지점이다. 황제의 권위는 군대에 예속되고, 정치적 안정은 피의 오락으로 유지됐다. 콜로세움의 환호 뒤에서 로마는 이미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찬란한 제국의 상징이었던 콜로세움은 팍스 로마나의 종말을 알리는 무대였다.

복수와 권력, 그리고 검투사
‘글래디에이터 II’는 전편의 20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루시우스(폴 메스칼)는 전편의 영웅 막시무스의 유지를 이어받은 인물이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손자이자 루실라(코니 닐슨)의 아들이다. 하지만 권력 다툼을 피해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에서 아내와 평범하게 살아간다. 

영화는 누미디아의 해안도시 공성전으로 시작한다. 성벽 위 수비군이 화살을 쏘아대고 거대한 투석기가 바위를 날린다. 아카시우스 장군(페드로 파스칼)이 이끄는 로마 군단이 누미디아성을 포위한다. 결국 성은 함락되고 살아남은 주민들은 노예로 끌려간다. 루시우스는 아내를 잃고 포로로 잡힌다. 분노에 찬 그는 복수를 맹세한다.

노예 상인 마크리누스(덴절 워싱턴)는 루시우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검투사로 훈련시킨다. 마크리누스는 단순한 노예 상인이 아니었다. 그는 권력을 노리는 야심가였다. 루시우스를 이용해 황제와 아카시우스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루시우스는 콜로세움에서 전편의 막시무스처럼 최고의 검투사로 떠오른다.

영화는 단순한 검투사의 복수극이 아니다. 권력의 본질, 대중 조작, 그리고 제국의 쇠퇴를 다룬다. 콜로세움의 함성 뒤에 숨겨진 로마제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준다.

감독은 전편보다 더 거대한 스펙터클을 선보인다. 하지만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다. 우선 영화의 배경은 서기 200년경으로 실제 역사에서 누미디아는 이미 기원전 46년에 로마의 속주가 됐다. 즉, 영화처럼 당시 누미디아가 독립된 왕국으로서 로마와 대규모 공성전을 벌일 상황이 아니었다. 이 장면은 로마가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사투를 벌이던 2차 푸니전쟁의 핵심 전투인 시라쿠사 공성전의 시각적 재현에 가깝다. 콜로세움에 물을 채워 해전을 재현하는 나우마키아(모의해전) 장면은 실제로 열렸다. 하지만 상어의 등장은 영화적 상상력이다.

마크리누스는 관료 출신으로 첫 황제에 오른 인물로, 영화적 재미를 위해 ‘자수성가한 잔혹한 노예상’으로 각색됐다. 실제로는 약 1년 뒤 정치적 정적들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도망치다가 붙잡혀 처형됐다.

루시우스(폴 메스칼)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로 싸우는 모습. 파라마운트 픽처스 제공
루시우스(폴 메스칼)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로 싸우는 모습. 파라마운트 픽처스 제공


검투사, 로마의 아이돌?

검투사(Gladiator)라는 이름은 글라디우스(Gladius), 즉 로마 검에서 유래했다. 검투사는 종류가 다양했다. 무르밀로(Murmillo)는 투구와 큰 방패로 무장했다. 레티아리우스(Retiarius)는 그물과 삼지창을 사용했다. 트라케스(Thraex)는 작은 방패와 곡검을 들었다. 서로 다른 무장을 한 검투사들을 대결시켜 관객의 흥미를 높였다. 검투사 시합은 사실 오늘날의 WWE, UFC 같은 프로 격투 스포츠와 비슷했다. 검투사의 사망률은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낮았다. 이는 검투사 한 명을 훈련시키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막대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검투사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부유한 여성들의 연인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한 경기장의 벽에는 ‘처녀들을 한숨짓게 하는 자’라는 낙서가 남겨져 있다. 이는 검투사가 당시 로마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증명한다. 검투사는 로마의 아이돌이자 섹스 심볼이었다.

가장 유명한 검투사는 스파르타쿠스다. 기원전 73년 그는 카푸아 검투사 학교에서 70명과 함께 탈주했다. 이것이 12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반란으로 커졌다. 하지만 기원전 71년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반란은 진압됐다. 검투사 시합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점차 금지됐다.

콜로세움은 로마 제국의 영광과 잔혹함을 동시에 상징한다. 건축학적으로는 위대한 업적이지만 그곳에서 흘린 피는 수십만 명에 달한다. 콜로세움은 황제가 대중에게 주는 가장 거대한 뇌물이었다. 황제는 이곳에서 생과 사를 결정하는 신과 같은 권능을 과시했고, 관중은 엄지손가락 하나로 그 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제국의 일원이라는 강력한 소속감을 느꼈다.

필자 김인기는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 테크플러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는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 테크플러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