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봄은 아니지만

입력 2026. 02. 02   14:45
업데이트 2026. 02. 0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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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오늘 전출명령서를 받았습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마음이 잠시 멈춥니다. 한 장의 문서 안에 한 부대에서 보낸 시간과 사람들, 계절 하나가 접혀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전출일자는 2월 5일입니다. 아직 겨울이지만 공기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바람은 차가운데 햇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부대 담장 아래에는 얼음 사이로 작은 흙빛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아직 봄은 아니지만 봄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 부대에 처음 왔을 때도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치는 날도 있었지만, 웃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하루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곳은 어느새 제가 머물렀던 자리가 됐습니다.

아버지, 전출은 떠남이지만 사라짐은 아니라는 걸 이젠 알 듯합니다. 비록 한 장소를 떠나지만, 그곳에서 배운 태도와 마음은 그대로 다음 자리로 가져갑니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 일을 버티는 자세,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법까지도요.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죠. “자리는 바뀌어도 사람은 남는다”고. 그 말을 군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됐습니다. 부대가 바뀌고 직책이 달라져도 사람으로서 자세는 바뀌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요.

출발은 늘 두렵습니다. 익숙한 풍경과 얼굴을 떠나 다시 낯선 곳에 서는 일은 언제나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머무름이 안락함이라면 출발은 성장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 전출명령서를 받고선 생각했습니다. 이건 끝이 아니라 이동이라는 것을, 이별이 아니라 확장이라는 것을. 한 계절을 접고 다음 계절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을요.

아직 봄은 아니지만 봄으로 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이제 다시 출발합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아버지, 어디에 가든 사람을 먼저 보며 서겠습니다. 조급하지 않게,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게 제가 배운 방식대로 살아가겠습니다.

다시, 제 자리에서 천천히 저의 계절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구지훈 상사 육군7기동군단 2강습대대
구지훈 상사 육군7기동군단 2강습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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