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라는 이름의 도피를 멈추고 벽돌 한 장을 들어라

입력 2026. 02. 02   14:44
업데이트 2026. 02. 0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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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저마다 수첩에 ‘새로운 나’를 설계한다. 금연과 운동, 외국어 공부부터 커리어 도약까지 정교하게 짜인 계획표는 그 자체로 이미 목표에 도달한 것 같은 착각을 선사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뼈아픈 진리를 일깨운다. “우리는 집을 지어 봐야 건축가가 되고, 악기를 연주해 봐야 연주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옳은 행위를 함으로써 올바른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해야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행동을 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 이 문장은 인간의 정체성이 ‘결심’이나 ‘잠재력’이 아닌 ‘반복되는 행위’ 속에 존재함을 선언한다.

우리는 완벽한 계획이 실천을 보장하리라고 믿지만 현실에서 거창한 계획은 종종 행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분석 마비’ 상태에 빠지면 실행에 따르는 마찰력과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세밀한 계획에 집착한다. 벽돌 한 장을 올리는 수고로움 대신 도면의 선 하나를 수정하는 안락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에네르게이아(Energeia·현실태)’는 잠재된 가능성이 활동을 통해 실제로 구현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 도면이 있어도 망치를 들지 않으면 건축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리 고결한 윤리의식을 품고 있어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결코 ‘좋은 사람’으로 불릴 수 없다.

이러한 실천의 철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사상가들의 공통된 가르침이었다. 동양의 왕양명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며 “앎은 행함의 시작이요, 행함은 앎의 완성”이라고 역설했다. 그에게 실천이 따르지 않는 지식은 진정한 앎이 아니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역시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해야 한다.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행해야 한다”며 생각의 씨앗이 행위라는 토양을 만나야만 생명력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한 발 나아가 행동으로 감정과 의지를 조절할 수 있다고 봤다. 용기가 생기길 기다렸다가 행동하는 게 아니라 두렵더라도 용감한 행동을 먼저 선택할 때 비로소 내면에 ‘용기’라는 덕목이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결국 존재가 행위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행위가 모여 우리의 존재를 빚어낸다.

새해의 다짐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작’의 무게를 너무 무겁게 설정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탁월함(Arete)이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습관(Hexis)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습관은 거창한 도약이 아니라 오늘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행동에서 시작된다. ‘매일 운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헬스장 1년권을 끊는 고민보다 오늘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5분의 행위가 더 본질적이다. 변변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연습이 쌓여 거장을 만들고 사소한 벽돌 한 장이 쌓여 견고한 성을 이룬다.

이제 펜을 내려놓고 몸을 움직여야 할 때다. 완벽한 계획이라는 ‘생각의 성’ 안에 머물러 있기에는 우리가 증명해야 할 삶의 무대가 너무도 넓다. 2026년의 끝자락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는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원대한 꿈을 꿀 용기가 있다면 그 꿈을 위해 불완전한 첫발을 내딛는 무모함도 함께 갖춰야 한다. 주저하지 말고 행동하라. 그리하여 당신이 꿈꾸는 바로 ‘그 사람’이 되길 응원한다.

권지민 소령 육군3사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권지민 소령 육군3사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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