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그들이 온다
CIA 최악의 ‘두더지’가 남긴 교훈
의심 피하기 쉬운 내부 인물
보안교육 이수·절차도 익숙
감시 사각지대 정확히 알아
재산 변화·스트레스 요인 등
구성원 장기적으로 관찰하고
신뢰 검증하는 조직문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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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사망한 냉전기 최악의 스파이
지난달 5일 미국 CIA 역사상 최악의 내부 스파이로 꼽히는 올드리치 에임스(Aldrich Ames)가 84세로 옥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냉전이 끝난 지 35년이 지났음에도 그의 이름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상징하는 스파이 유형, 즉 ‘두더지(MOLE·내부 스파이)’의 위험성은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CIA에서 대(對)소련 방첩 책임자였던 에임스는 1985년 4월 워싱턴 주재 소련 대사관을 방문, 소련 KGB 파견관을 수신자로 봉투를 전달했다. CIA가 운용하던 소련 정보원 2명의 자료와 자신의 연락처 및 5만 달러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혼으로 인한 빚을 갚아야 했던 데다 낭비벽이 심한 콜롬비아 출신 새 부인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에임스는 처음부터 금전이 목적이었다. 1994년 2월 체포될 때까지 9년간 그가 수백 건의 정보를 넘기고 받은 대가는 무려 270만 달러였다.
그의 배신으로 미·소 정보전의 균형은 무너졌고 미국에 정보를 제공하던 다수의 소련 내 정보원들이 체포되거나 처형됐다. 그가 소련 방첩 담당관으로 CIA뿐 아니라 FBI 등 미국 내 다른 기관과 우방국 정보기관들이 운용하던 소련 정보원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는 심각했다.
소련을 상대로 미국 정보기관들이 수행하던 100여 건의 공작 내용과 활동기법이 고스란히 노출됐고, 30여 명에 달하는 소련 내 정보원 명단 거의 대부분이 유출돼 최소 10명이 처형됐다. 대표적으로 20여 년간 CIA에 정보를 제공하던 소련 내 최고위급 스파이 드미트리 폴랴코프 장군은 에임스에 의해 노출돼 1988년 처형됐다.
더 중요한 피해는 소련이 미국의 오판을 유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작 활동과 정보 소스를 알게 된 소련 정보기관은 이들을 활용해 가짜 정보를 흘리는 기만 공작을 전개했다. 이 중 일부는 레이건·부시·클린턴 등 3명의 미국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돼 소련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야기했다. 가장 치명적인 점은 에임스는 단순한 정보 유출자가 아니라 방첩시스템 자체를 무력화한 내부자였다는 사실이다.
치명적인 내부 스파이 ‘두더지(MOLE)’
CIA는 소련 내 정보원들이 지속적으로 체포되자 통신감청, 암호해독, 내부 스파이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방첩 작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어디서 정보가 새는지를 찾아내지 못해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소련 내 기존 스파이들의 활동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스파이 물색도 중단했다. 소련을 상대로 한 정보활동 체계 자체는 붕괴 위기에 처했다.
철의 장막 속에서 소련의 정치·군사·외교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 주던 스파이망이 파괴되자 미국은 소련에 대한 통찰력을 잃고 소련의 기만 정보에 의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됐다. 소련 붕괴 직전까지 소련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CIA는 소련 내 정보원 2명이 처형되자 1986년 후반 정보유출 원인을 찾기 위한 특별팀을 구성했다. 하지만 3명이 더 사라진 1990년이 돼서야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CIA가 에임스를 주목한 것은 또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는 스파이 활동 중 1986년과 1991년 두 차례 정기 거짓말탐지기 테스트를 받았지만 무사히 통과됐다. 검사관과의 친분과 자신감 등으로 인해 생리적 반응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주목받게 된 것은 과도한 사치였다. 에임스는 연봉이 6만9000달러에 불과한데도 현금 54만 달러로 집을 사고, 4만 달러짜리 고급 재규어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월급보다 카드 사용액이 많았다.
CIA는 1991년 FBI에 방첩조사를 의뢰했다. FBI는 1992년 6월 FISA법원(외국정보활동감시를 위한 특별법원)의 영장을 받아 전화감청, 집과 차량에 감청장비 및 카메라 설치, 컴퓨터 신호감청, 24시간 미행 등 집중감시를 시작했다. 그해 10월에는 처가 방문 명목으로 콜롬비아를 방문한 그가 소련 정보요원과 접선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FBI는 1994년 2월 21일 소련 정보기관과 마약 관련 회의를 위해 모스크바로 출발하기 직전 그를 체포했고 법원은 보석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체포 후 그는 CIA나 FBI는 두렵지 않았으나 소련에서 자신에 대해 아는 망명자가 올까봐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방첩 업무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어 노출 가능성이 없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돈을 쓰지 않았다면 잡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지만 돈을 목적으로 한 스파이는 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쓰며 느끼는 쾌감이 목적이므로 이를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결국 에임스는 돈 때문에 스파이가 됐고, 돈 때문에 체포된 것이다. 에임스 사건은 CIA의 방첩 실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미국 정보기관이 내부자 위협에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들었으며, 방첩관련 제도가 대폭 개선되는 계기가 됐다.
다시 일깨운 내부 방첩의 중요성
스파이의 유형은 다양하다. 외교관을 가장한 백색요원, 사업가로 위장한 흑색요원, 조직을 배신하고 상대편의 스파이가 된 이중스파이, 산업기술을 노리는 경제스파이,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는 해커까지. 그중에서도 ‘두더지’는 가장 치명적이며 가장 탐지하기 어려운 스파이다. 그들은 이미 내부에 들어와 있으므로 외부에서 탐지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모든 보안장치를 무력화한다.
보안 교육을 받았고 절차를 알고 있으며 감시 사각지대를 정확히 이해한다. 특히 동료를 의심하지 않는 문화가 강한 정보기관의 속성을 기반으로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외피를 쓰고 활동한다. 에임스가 수년간 이해할 수 없는 사치를 했음에도 조기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요한 기관일수록 구성원의 재산 변화, 행동 패턴, 심리적 스트레스 요인을 장기적으로 관찰하는 지속적 신뢰 검증이 필요하며 경계심이 조직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 두더지는 금전, 자존심, 불만, 좌절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적 요소에 착안하는 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 방첩이다.
오늘날 국제질서는 신냉전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긴장 고조는 정보전의 가치를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총성과 미사일 이전에 정보와 영향력 공작, 내부 분열이 먼저 작동하는 시대다.
이러한 환경에서 스파이 활동은 오히려 더 은밀하게 조직 내부로 파고들 수 있다. 군과 정보기관, 첨단기술 연구소, 방산기업과 핵심 인프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민간 영역 등 모든 공간이 두더지들의 잠재적 활동 무대가 된다.
올드리치 에임스는 감옥에서 생을 마쳤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위험한 적은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각국 정보기관과 핵심 조직은 같은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내부를 얼마나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가?’ 에임스의 죽음은 과거의 종결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경고가 돼야 한다. 방첩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는 순간 또 다른 두더지가 이미 조직 안에서 조용히 적을 위한 보고서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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