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의 활인검 DNA

입력 2026. 01. 28   16:24
업데이트 2026. 01. 2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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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비역 장교가 필자에게 언론에서 사용하는 ‘방산 먹거리’라는 표현이 마뜩잖다고 했다. 먹거리는 우리 방위산업도 반도체나 자동차 못지않은 유망 산업이 돼 간다는 뜻에서 붙여진 긍정적 수식어다. 하지만 사람을 해치는 무기인데, 그걸 먹거리로 부른다니 사려 깊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처음엔 조금 과민하다 싶었지만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수출 기여도와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 이른바 K방산은 국가 발전에서 이미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북한의 위협과 지정학적 위험까지 감안하면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이 이뤄져야 함이 마땅하다. 다만 바로 그런 차원에서라도 한국 방산의 정체성을 이쯤에서 중간점검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예컨대 우리는 불가피한 안보적 이유로 군사무기를 개발·수출하고 있지만 평화 애호 국가의 책무를 준수한다는 원칙 같은 게 확고했으면 좋겠다. 이웃 일본도 평화헌법과 자위대라는 포장하에 군사대국 이미지를 희석하는 정교한 전략을 쓴다. 국제적으로도 책임경영이 중요해지는 추세인데, 방산도 예외가 아니다. 방산도 ‘고객’에게 소구력이 있어야 지속 발전할 수 있다.

기왕이면 ‘민주주의의 무기고’ 같은 고상한 느낌이면 더 좋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든든한 병기창인 미국의 별칭이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국에도 기회가 왔다. 최소한, 대놓고 무기 장사하듯이 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무기를 팔면서 굳이 ‘세일즈 외교’라고 할 필요는 없다. 우수한 가성비니, 신속한 납품이니 하는 마케팅도 이제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나.

국내 모 방산기업의 경영철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회사는 1980년대 중반 정부 시책에 부응해 어렵사리 지대지 탄도미사일 제작에 성공했지만 정작 사내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오너일가가 인명살상무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 이후 회사는 레이다나 통신·전자전 장비 등에 주력하고 유도무기도 대공·대함 쪽에 집중하고 있다.

모든 무기는 궁극적으로 파괴적이며 공격과 방어의 구분도 모호하다. 그러나 같은 무기를 만들어도 사연은 다를 수 있다. 한국은 주요 방산수출국 가운데 제국주의 경험이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K방산은 식민 통치나 전쟁의 참상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는 순수한 자주국방 열망의 산물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덕적 정당성이 있다.

K방산의 DNA에는 우리 무예의 ‘활인검(活人劍)’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활인검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살리는 검’. 무(武)의 목적이 살상이 아니라 바른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호민(護民)·애민(愛民)의 정신이다. 함부로 칼을 뽑지 않고, 부득불 칼을 쓰더라도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게 최고의 무공으로 여겨졌다.

이는 방어를 우선하되 공격에는 강력히 응징하는 K방산과 상통한다. 적이 감히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함으로써 싸우지 않고 이기는(不戰勝) 병략이다. 현무 계열 미사일 등의 뛰어난 정밀도는 불필요한 살상을 피하는 전통무예의 윤리와 닮았다. K2 전차 등의 탁월한 방호력은 전투원을 도구로 여기지 않는 인명 중시 철학을 담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거북선이나 신기전 같은 당대 최고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남을 먼저 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백범 김구가 소망했듯이 우리가 힘을 기르는 이유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위함이다.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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