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마주하는 용기

입력 2026. 01. 27   15:58
업데이트 2026. 01. 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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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한다. 정답이 명확해 보이는 간단한 시각 테스트인데, 누가 봐도 정답은 B가 확실했다. 하지만 실험 참가자의 70%는 엉뚱하게도 A를 정답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A라고 답해서다. 명백한 진실 앞에서도 대다수가 집단의 분위기에 눌려 자신의 판단을 의심했고, 타인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 주는 유명한 실험이다. 이를 ‘상황의 힘’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인간은 주변 환경과 상황에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는 존재다. 성경 이야기에도 유사한 장면이 발견된다. 신이 약속한 땅에 들어가기 전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해 그 땅을 시찰하게 한 뒤 보고받는 장면이다. 그중 10명은 절망적인 보고를 쏟아 냈다. 그러자 수많은 군중이 부정적 여론에 순식간에 휩쓸려 밤새 통곡하며 좌절한다. 그 땅이 얼마나 비옥한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다수가 만들어 낸 부정적 상황의 힘이 그들의 이성과 용기를 마비시킨 것이다. 반면 남은 두 사람은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외쳤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군중은 그들에게 돌을 던지려 했다. 이는 다수의 비관론이 한 집단을 어떻게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우리는 거대한 상황의 힘 앞에서 늘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걸까? 기억해야 할 점은 상황이 인간을 바꿀 수 있지만, 그 상황을 다시 바꾸는 것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2005년 10월 서울 천호역에서 발생한 지하철 사고는 이 희망을 증명하는 강력한 예시다. 한 승객이 승강장 틈새에 발이 빠지는 아찔한 사고가 일어났다. 지하철의 무게는 무려 33톤. 누구도 그 육중한 쇳덩이를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때 한 남성이 외쳤다. “저기요, 저랑 이것 좀 같이 밀어 봅시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옆 사람이 힘을 보탰고, 그 모습을 본 또 한 사람이 달려들었다. 그러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승강장에 있던 모든 시민이 달라붙어 그 무거운 지하철을 기울여 사람을 구해 낸 것이다. 심리학에서 이를 ‘3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이 하늘을 가리키면 아무도 보지 않지만, 세 사람이 동시에 하늘을 가리키면 지나가던 모든 사람이 멈춰 서 하늘을 쳐다본다는 것이다. 단 3명만 모여도 상황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황의 힘’과 마주한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혹은 사회에서 “원래 그래” “다들 그렇게 해” “나서지 마”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상황을 깰 수 있는 힘 또한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천호역의 기적을 만든 것은 33톤을 들어 올린 초능력이 아니라 “밀어 봅시다”라고 외친 첫 사람의 용기, 그 외침에 반응해 준 두 번째·세 번째 사람의 연대였다. 상황 탓만 하며 주저앉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바꾸는 첫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은 우리 몫이다. 진정한 성장은 상황에 순응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김요한 대위 육군화력여단 목사
김요한 대위 육군화력여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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