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Ⅲ
아프리카-에티오피아 ②
제국주의 외세 침공 격퇴 ‘대동단결’
유일하게 주권 유지 아프리카 국가
이탈리아 재침공에 5년간 항전도
찬란한 역사에도 기념관 유물 빈약
6·25참전용사 마라토너 사진 눈길
승리의 기억과 비극의 현실 교차
에티오피아는 2020년 11월 발발한 티그라이 내전(Tigray civil war)을 수습하는 중이다. 이 전쟁으로 50만 명의 사망자와 수백만 명의 난민이 생겼다. 2022년 11월 평화협정으로 내전은 마무리됐지만 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국가적 재앙을 겪은 에티오피아가 이른 시일 안에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는 힘들 것 같다.
‘인류의 출발점’을 상징하는 인간 유골
아디스아바바 국립박물관에 들어서면 ‘에티오피아, 인류 기원의 땅(Ethiopia, Land of Origins)’이라는 표어가 있다. 최초 인류 조상의 유물이 있다는 뜻이다. 인류학계에 의하면 인간과 가장 흡사한 첫 번째 인류는 약 300만 년 전에 출현했다. 채 100년을 못 사는 우리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이 박물관의 ‘루시(Lucy)’라는 화석은 약 320만 년 전에 살았다는 여성 유골이다. 키 1m가량에 20세 전후의 여자다. 전시실에는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발굴된 희귀 인간 화석도 많다.
그런데 박물관 정원에는 생뚱맞게 옛 쿠데타 정권의 선전 동상이 남아 있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해야 할 젊은 세대의 사명’이라는 문구 앞에 청년들이 줄을 서 있다. 개인이 아니라 ‘명령받은 병사·청년 집단’의 역할을 강조한 내용이다. 과거 잘못된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이 동상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80개 부족의 단결, 그리고 빛나는 승리
2024년 2월 아디스아바바에 최대 규모의 ‘아드와 전승기념관(Adwa Victory memorial)’이 건립됐다. 문화·체육시설을 포함한 웅장한 복합건축물이다. 아드와전투는 1896년 3월 1일 6만여 명의 이탈리아군이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며 시작됐다. 당시 에티오피아 80개 지방 부족이 대동단결해 침공군을 격파했다. 이탈리아군은 최신 무기로 무장했지만 험준한 산악지형에서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역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됐다. 그러나 유일무이하게 에티오피아만이 이탈리아를 제압하고 주권을 유지했다. 다양한 부족들이 외세 침공에 하나로 뭉쳤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다. 이탈리아로선 굴욕적인 종전 문서에는 ‘이탈리아는 절대적으로 에티오피아 주권과 독립정부를 인정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당시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 약소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보호령으로 취급했다. 에티오피아는 유럽이 아프리카 국가의 독립을 명문화한 유일한 사례다.
국제사회 외면에도 끈질긴 저항
하지만 1935년 10월 3일 ‘위대한 로마제국 재건설’을 주창한 무솔리니는 다시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이탈리아군은 공중폭격·포격·기계화부대는 물론 화학무기까지 퍼부었다. 1936년 5월 5일 무솔리니 군대는 아디스아바바에 입성했다. 그리고 아드와전투의 복수로 가혹한 5년간의 군정을 펼쳤다.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는 국제연맹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형식적인 불법 침공 규탄만 외쳤다. 이해관계가 없는 국가의 불행에 누구 한 사람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이탈리아 점령 기간 내내 에티오피아 국민은 끈질기게 저항했다. 결국 1941년 영국의 지원을 받으며 침공군을 몰아냈다.
이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하 1층~지상 1층 규모의 전승기념관 전시 유물은 너무나 빈약했다. 현재 다양한 역사 자료를 수집 중이라고 한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6·25전쟁 참전용사인 전설적인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의 사진이 붙어 있다.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의 한국 사랑
1960년 9월 로마에서 개최된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눈을 의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에티오피아 아베베가 2시간15분16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으로 들어온 것. 100리 길을 달려온 아베베는 맨발이었다. ‘가난한 에티오피아 선수는 신발 살 돈이 없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틀린 말이다. 대표선수의 부상으로 갑자기 출전한 아베베가 신발을 맞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국을 침공했던 적국 수도에서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건 아베베는 6·25전쟁 참전용사였다.
1951년 19살의 나이에 에티오피아군 2진으로 한국을 돕기 위해 달려왔다. 그는 한국 파병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1966년 한국은 ‘9·28 서울수복기념 국제마라톤 대회’를 준비했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가난한 한국이 개최하는 대회에 유명 선수들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바로 이때 자신이 목숨 걸고 싸웠던 한국을 위해 세계 최고의 마라톤 스타 아베베가 참가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정상급의 선수들도 몰려왔다. 인천상륙작전 해안에서 출발한 이 대회에서 아베베는 2시간17분4초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했다. 수많은 한국인이 참전용사 아베베에게 보낸 열광적인 환호와 뜨거운 박수는 그의 기록 단축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내전의 희생자, 버려진 거리의 고아
기념관 밖을 나오니 어둑어둑한 저녁이다. 전승기념탑 광장을 돌아보던 중 아찔한 장면을 목격했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변에서 맨발의 두 아이가 정차한 승용차 창문을 두드리며 구걸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형이 어린 동생을 옆에 두고 손짓으로 구걸한다. 즉시 경찰관에게 아이들의 위험성을 알렸다. 마지못해 그는 아이들을 인도 위로 내쫓는다. 해발 2400m의 아디스아바바의 밤은 초겨울 날씨다. “저 아이들은 이 추운 밤에 어디로 가느냐?”고 경찰관에게 물었다. 그는 “가족이 없다(They are no family)”는 말을 남기고 귀찮다는 듯이 사라졌다. 너무나 흔한 일이라 신경 쓸 수 없다는 태도다.
택시 기사에게 눈에 밟히는 어린아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오랜 내전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이 지방에서 도시로 많이 오고 있다. 그들은 밤에 주로 공사판, 하수구, 화장실에서 추위를 피한다”고 말했다. 열악한 재정에 허덕이는 에티오피아 정부는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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