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의 저자 존 콜라핀토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모른다”는 것을 특이한 철학적인 아이러니로 꼽는다. 자기 목소리를 정작 자기 자신만은 잘 모른다는 진실.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본 순간 느껴지는 이질감, 그 까닭은 물리적으로 명확하다. 우리 모두는 본인의 목소리를 공기를 통해서만 듣는 게 아니다. 머리와 목의 연조직과 경조직을 통과하는 진동의 형태, 골전도로도 듣는다. 청각피질에서는 이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과 완전히 다른 소리로 만들어져 훨씬 풍부하고 낮게 들린다. 다시 말해 우리는 평생 내 목소리의 가장 좋은 버전을 듣고 사는 셈이다. 그에 비해 타인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객관적인 소리’를 듣는다.
이 아이러니는 단순히 음성학적인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말하는 태도 전체로 확장된다. 공적 말하기 코칭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과정이 있다. 자신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타인의 시선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작업이다. 본인은 자신감 있게 요점을 잘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촬영된 영상 속 그는 불안정한 시선으로 불필요한 표현을 나열한다. 경청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믿지만 위압감이 느껴지는, 뻣뻣하게 굳은 자세와 표정을 보인다. 내가 전달하려 했던 ‘의도’와 타인에게 실제 전달된 ‘효과’ 사이에는 종종 큰 괴리, 또는 불일치가 생기는데, 많은 사람이 이를 모른 채 또는 외면한 채 말하고 살아간다.
조직 내 불통이나 오해는 바로 이 ‘모름’에서 비롯된다. 말을 하는 이가 자신의 의도에만 매몰돼 실제 듣는 이가 어떻게 메시지를 받아들일지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무리 논리적인 내용이라도 잠재의식적으로 ‘불안정한’ ‘고압적인’ 혹은 ‘진정성 없는’ 신호로 해석되면 설득력은 즉각 사라지는데도 말이다.
말을 잘하기 위한 첫걸음은 기술적인 훈련이 아니다. 주관적인 인지를 객관화하는 작업, ‘자기 관찰(Self-monitoring)’ 능력을 고도화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 이는 생각보다 괴롭다. “내가 저렇게 말한다고요?”라며 어색한 웃음으로 시작해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실제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내가 알지 못하던 나의 목소리와 눈빛을 직면하고 제삼자의 가감 없는 피드백을 수용하는 행위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런 고통스러운 ‘충격’이야말로 공적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강력한 메타인지적 자각이 된다.
한 리더가 있었다. 그는 구성원과 소통 상황에서 문제가 있음을 자각했으나, 그 원인을 ‘일머리’ 없고 ‘무례한’ 구성원 탓으로 돌려왔었다. 그랬던 그가 해상도 높은 영상 속 자신을 보며 ‘탄식’을 터뜨렸다. ‘모름’에서 ‘알아차림’으로 바뀌는 순간의 한숨이었다. 구성원을 향한 자신의 눈빛이 어떠한지, 의견을 묻고자 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공격적인 느낌을 주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눈빛과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곧 세상과 소통하는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공적 말하기는 외부에 드러난 자아의 가장 첨예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은 내 무의식적 습관, 내면의 불안정성, 혹은 숨겨진 자신감 같은 나의 실체를 성찰하는 유용한 과정이다. 내가 인식하는 나의 눈빛과 목소리가 아닌, 타인이 경험하는 나의 눈빛과 목소리가 어떨지 제대로 ‘발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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