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아덴만 여명작전 15주년 기념식에 가다
작전 개시 시각에 맞춰 승리 기념
청해부대 장병·석해균 선장 등 한자리
국민 생명·안전 수호 각오 되새겨
국민 보호라는 국군의 사명감과 청해부대 장병들의 군사작전, 이를 뒷받침한 의료 대응이 맞물리며 아덴만 여명작전은 성공을 거뒀다. 21일, 작전 성공 15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식 현장에서 참석자들은 그날의 결단과 용기를 오늘까지 이어가야 함을 되새겼다. 글=조수연/사진=한재호 기자
15년 전 어둠을 헤치고 …
“선원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2011년 1월,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역.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 한가운데서 우리 상선 삼호주얼리호가 해적에게 피랍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석해균 선장을 포함한 선원 21명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고,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인질 구출 작전인 ‘아덴만 여명작전’이 개시됐다. 작전 환경은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이동 중인 선박을 상대로 한 단독 승선 작전은 실패 가능성과 인명 피해 위험이 아주 높은 임무였다.
청해부대 6진 소속 해군특전대원(UDT/SEAL)들은 치밀한 사전 준비를 바탕으로 임무에 나섰다. 대원들은 작전 전 선내 구조를 도면으로 숙지하고, 인질로 잡힌 선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며 상황별 대응 계획을 세웠다. 작전은 △고속단정 진수 및 출격 △검문검색대의 은밀 접근 △선박 진입 △목표지역 이동 △선박 장악 △전 격실 정밀수색까지 6단계로 진행됐다.
작전 개시 시점은 현지시간 새벽 4시46분. 희미하게 떠오르는 새벽빛 속 대원들은 고속단정을 타고 피랍 선박에 접근했다. 흔들리는 해상에서도 신속·정확하게 기동한 대원들은 단시간 내 해적 13명 중 8명을 사살했고 5명은 생포했으며 피랍 선원 21명 전원을 무사히 구출했다. 그렇게 아덴만 여명작전은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작전 개시 4시간 58분 만에 종료됐다. 해적과 인질이 혼재된 상황에서 이뤄낸 사상 초유의 구출작전이었다. 아군과 인질 모두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임무를 완수하며,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 역량과 원거리 작전 수행 능력을 세계에 입증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해적의 시선에서 작전을 되짚어 검토하며 작전 전반의 크고 작은 오차를 제거해 나갔던 ‘역지사지 시뮬레이션’이 작전 성공 요인으로 꼽혔다. 연합·우호군 해군과의 연합 작전을 신속히 수립·집행해 작전 현장의 돌발 변수들을 사전에 제거한 청해부대의 현장 작전 운영 능력도 높이 평가받았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공은 먼 해역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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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의 울림을 넘어…
해군작전사령부는 21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제15주년 아덴만 여명작전 기념식’을 개최했다. 작전 당시 청해부대 6진 작전참모로 임무를 수행했던 김경률(중장) 해군작전사령관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은 아덴만 여명작전 개시 시각에 맞춰 진행됐다.
행사에는 청해부대 6진 장병, 석해균 선장, 당시 작전에 기여한 주요 인사들, 해군작전사령부 장병과 해군서포터즈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석 선장의 항공 의무 후송을 지원했던 주한미군 의무 관계자들도 초청돼 연합 협력의 의미를 더했다.
행사는 박봉규 중령의 작전 경과 보고, 김 사령관의 기념사, 작전 기념 영상 상영,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의 회고 강연, 해군서포터즈 편지 낭독과 꽃다발 전달 등의 순서로 펼쳐졌다.
김 사령관은 기념사에서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공은 철저한 준비와 현장 전우들, 해군작전사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 결과”라며 “앞으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비태세 확립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행사장에 상영된 작전 기념 영상을 통해서는 현재 아덴만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청해부대 46진 장병들의 메시지와 새롭게 임무를 이어받는 47진 장병들의 각오가 소개됐다. 특히 46진이 당시 여명작전에 투입된 최영함에서 임무를 수행했다는 점은 참석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기념식 후 참석자들은 아덴만 여명작전 전적비를 찾아 헌화와 기념촬영을 했고, 해군작전사령부는 작전 참전 장병과 해군서포터즈에게 감사 선물을 전달했다. 초등학생 서포터즈에게는 안전 우산을 증정해, 15년 전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던 장병들의 다짐을 잊지 않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의미를 되새겼다.
인터뷰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
“핑계는 없다…일단 살려야 한다”
한 명의 희생자 없이…
군 의료진 완전작전 완성
생명 구한 한미동맹 사례
의료영역의 글로벌 협력
안전 지키는 체계로 확장
아덴만 여명작전이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는 ‘완전작전’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데는 전투 현장 밖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지킨 군 의료진의 역할이 컸다. 그 중심에는 당시 아주대학교 외상외과 교수였던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있었다.
이 병원장이 개인 보증이라도 서겠다며 밀어붙인 에어 앰뷸런스 장거리 항공 의무 후송으로 석 선장은 무사히 국내로 이송돼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아덴만 작전을 통해 한미동맹이 정치·군사적인 것뿐 아니라, 실제 생명을 살리는 체계로 작동해야 함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후송에 도움의 손길을 건넸던 미 의무요원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병원장은 이날 행사 현장에서도 작전 당시 항공 의무 후송을 지원한 미 의무요원들을 초대하고 거듭 감사를 전했다.
그는 “아덴만 여명작전은 의료 영역에서도 글로벌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였다”며 “한미동맹은 국내에서만 작동하는 개념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함께 움직이는 체계로 확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해군 링스 헬기의 항속거리로는 장거리 비행이 어렵다”며 “미군이 운용하는 고정익 항공기와 해상작전용 헬기(SH-60 시호크) 등을 연계해 대륙 간 이송이 가능토록 글로벌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 병원장은 군 의료의 기본 원칙도 분명히 했다. 그는 “중증외상 환자는 빠르게 분류해 골든아워 내에 적절한 치료가 가능한 기관으로 이송해야 한다. 석 선장 사례는 미 해군 항공의료진을 포함해 모든 단계에서 교과서적인 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에 가능한 생존 사례였다”며 “일단 살아서 도착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고, 그 과정에서 핑계는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현재 국군대전병원장으로 임무를 수행 중인 이 병원장은 개인적인 소회도 전했다.
“30여 년 전 해군 갑판수병으로 복무했던 기억을 잊고 지내다가, 아덴만 여명작전 이후 해군에 재입대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현역자원으로서 군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인연이라는 생각도, 쳇바퀴 같은 인생이란 생각도 듭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전투력과 생존성을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총성만으로 완성된 작전이 아니었다. 글로벌 협력 체계와 군 의료의 판단, 그리고 책임 있는 결단이 맞물렸을 때 비로소 가능했던 ‘완전작전’이었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2011년 1월 21일 청해부대 6진 최영함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완벽히 구출한 우리 국군의 첫 해외 구출 작전이다. 작전 개시시간이 2011년 1월 21일 새벽 4시 46분 ‘여명’ 시간대임을 고려해 작전 명칭을 명명했다. 당시 해군작전사령부는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작전통제권을 이양받아 부산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아덴만의 작전상황을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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