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사랑과 예우가 필요합니다

입력 2026. 01. 21   14:45
업데이트 2026. 01. 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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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마음이 공감될 듯한 시기다. 서울에 자가도 없고 대기업을 다닌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을 나서야 하는 즈음이라 김 부장에게 감정이입이 안 될 수 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37년의 군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군문을 나선다. 육군 장교로서 30년, 전문군무경력관으로서 7년, 단순히 37이라는 숫자로 표기하기엔 상당히 묵직한 세월이었다. 청춘과 중년을 담은 시간이었고, 삶의 가치관과 신념을 형성하는 과정이었으며,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오로지 조국의 부름에만 충실했던 참으로 소중하고 보람 가득한 순간의 집합체였다. 군이 더 나은 조직으로 성장하도록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작은 소망을 올려본다.

첫째, 수십 년간 몸 바친 군 구성원의 마지막이 단 한 장의 계약 미연장 공문과 공람으로 마무리되는 현실은 너무 쓸쓸하다. 행정절차로야 맞을지 모르지만 사람에 대한 예우로는 부족하다. “그간의 헌신과 노고에 깊이 감사한다”는 한마디가 그리운 건, 단지 나의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떠나는 이에게는 마지막 인상이 곧 남아 있는 조직의 얼굴이다. 작은 배려와 정성이 떠나는 이들을 영원한 군의 우군이자 무형의 전력을 만들 수 있다.

둘째, 고위직에 한해 퇴직 인원 정보를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퇴임행사를 하는 문화도 아쉽다. 국가를 향한 헌신은 계급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지 않다. 소리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30년 넘게 헌신한 준사관과 부사관 등 모든 장기 근속자의 헌신도 명예로워야 한다. 의전행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홈페이지에 명단을 공지하는 소소한 배려라도 보여 줘야 한다. 계급이 아니라 헌신이 기억되는 조직이길 바라 본다.

셋째, 청원휴가제도 개선을 생각해 봐야 한다. 전우의 슬픔을 애도하러 가는 길이 개인 연가로 처리돼야 하는 현실은 전우애를 강조하는 군 구성원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는 유사시 서로의 생명을 지켜 줘야 하는 운명공동체다. 전장에서 전우를 위해 몸을 던지는 용기는 평소 쌓아 온 깊은 신뢰에서 나온다. 전우가 부모상(喪)과 같은 슬픔을 나누는 길마저 개인 연가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은 우리 조직이 정말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지 되묻게 만든다. 법과 규정이란 틀에 갇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넷째, 전역과 퇴직을 앞둔 이들이 속마음을 나누고 조직에 바라는 말 한마디라도 전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퇴직자들의 경험은 군의 소중한 자산이다. 후배들에게는 경험을 전하고, 조직엔 건설적 제안을 남길 기회가 필요하다. 떠나는 이의 목소리에도 조직은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군을 사랑했고 조직의 취약점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귀중한 경험 자산을 그냥 흘려보낸다. 그들의 진솔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비난이 아닌 청춘을 보낸 군대가 더 강해지길 바라는 절절한 애국심의 발로(發露)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에서 행복은 물질적 성공이 아닌 인간적 회복이라고 제시한다. 김 부장은 많은 것을 잃은 뒤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지만, 우리 군은 잃기 전에 깨닫고 인간적 회복을 구성원들에게 줬으면 한다. 화려한 무기체계보다 더 강한 것은 전우 간 피 끓는 신뢰다. 작은 변화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기반이 되고 이로 인해 더욱 강하고 신뢰받는 군대로 발전해 가기를 소망한다.

한정호 전문군무경력관 가군 육군정보학교
한정호 전문군무경력관 가군 육군정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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