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토와 에겐 사이...촌므파탈, 빠지면 답이 없다

입력 2026. 01. 21   17:11
업데이트 2026. 01. 2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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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페르소나>> ‘스프링 피버’로 인생캐 만난 안보현, 복잡한 시대 단순함의 미학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에두르지 않는 진정성
강함·섬세함 오가던 기존 필모 캐릭터 압축
‘투박한데 무해한 단순함’에 시청자 열광

사진=tvN
사진=tvN


이 드라마는 도대체 뭘까. tvN 월·화 드라마 ‘스프링 피버’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복잡한 복선이나 모호한 도덕성 혹은 끝없는 반전으로 점철된 최근 장르물의 홍수 속에서 이 드라마는 지극히 단순하고 투박한 서사를 갖고 있다. 그건 이 드라마의 중심에 서 있는 배우 안보현이 연기해 낸 선재규라는 특이한 캐릭터 때문이다.

이 인물은 세련된 서울말 대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머리 쓰는 수싸움 대신 괴력을 발휘하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내세운다. 언뜻 보면 전근대적인 마초나 뒷골목 조폭을 연상시키지만, 실상 그는 복잡한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명쾌한 정의와 행동하는 선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선재규가 가진 캐릭터의 핵심은 ‘외형과 내면의 극단적 불일치’에서 오는 낙차에서 비롯된다. 이 낙차는 보는 이의 긴장감을 안도감으로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설렘으로 이어지는 감정을 경험하게 만든다.

선재규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마치 만화처럼 연출된 장면으로 그가 학교에 나타나자 멀리서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그 눈보라 속에 춥지도 않은지 반팔 차림으로 한쪽 팔에 용문신(사실은 용문신 문양의 팔 토시다)을 드러낸 그가 쿵쿵 바닥을 울리며 걸어온다. 멀리서 그를 본 선생님들은 무슨 난리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덜덜 떤다. 하지만 그런 외모와 달리 그가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보이는 말과 행동은 어딘가 ‘바른 사나이’의 모습이다.

그는 자식처럼 키운 한결이가 “어미, 아비도 없는 게 무슨 효행상이냐”며 효행상 후보에 올랐다가 취소된 것에 효행상의 기준이 뭐냐며 항의하고, 덜덜 떨며 “커피라도 한 잔 하자”는 윤봄(이주빈 분) 선생님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교장에게 “여는 여선생님한테 커피 심부름도 시킵니까?”라고 일갈한다. 또 “담배나 한 대 태우자”는 교장의 말에도 “여는 학교에서 담배도 피웁니까?”라며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본 윤리교사 윤봄은 속으로 생각한다. ‘깡패가 논리를 갖추면 저런 모습일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반전의 바른 모습과 논리가 긴장감을 안도로 바꾸고 설렘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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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규에 관한 오해는 거대한 체구와 괴력, 툭툭 내뱉는 거칠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 장르인 이 드라마는 이러한 오해를 뒤집는 것으로 웃음과 달달함을 만든다. 위협적인 육체는 ‘노동하는 육체’로 전환되고, 거칠고 투박한 사투리는 에둘러 말할 줄 모르는 ‘진심’으로 바뀐다. 선재규는 헬스장이 아닌 노동현장에서 다져진 근육을 보여 주면서 그의 힘이 과시용이 아니라 생존과 보호를 위한 도구임을 나타낸다. 또한 표준어가 가진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는 투박한 사투리는 ‘연애 리얼리티’에서 자주 보던 에둘러 표현하는 복잡함을 넘어 핵심을 꿰뚫는 순수함을 보여 준다. 이로써 노동과 진정성 있는 사투리를 담은 선재규는 이른바 ‘촌므파탈’의 면모를 지니게 된다.

그의 행동은 거침없다. 예를 들어 문이 잠겨 윤봄이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그는 고민 없이 배면뛰기로 담장을 넘어 문을 열어 준다. 이는 물리적 장애물인 담장과 더불어 심리적 장애물인 마음의 벽을 동시에 무력화하는 직진의 진심을 담고 있다. 윤봄이 탄 지하철을 전력 질주해 따라잡는 모습에선 기계문명의 속도를 인간의 의지와 육체로 따라잡는 아날로그적 사랑의 힘을 만화적 연출로 구현한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이러한 남성 캐릭터는 섬세함이 부족하고 배려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초’로 불리며 비판받았던 게 사실이다. 선재규는 다르다. 행동이 앞서 보이지만 거기엔 강한 도덕성이 전제돼 있다. 강인한 신체와 더불어 강인한 정신력이 결합된 불굴의 도덕성이라고나 할까.

사실 문제는 강인한 면모나 거침없는 행동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가진 방향이 잘못된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선재규는 흔히 섬세함이 소심함으로 느껴지던 남성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색깔을 띤다. 강인함과 거침없음이 약자를 보호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진정한 보호자의 면모로 드러난다는 점이 그것이다.

선재규라는 캐릭터로 안보현이 ‘인생캐’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솔솔 피어나고 있는 건 이 역할과 안보현이란 배우의 이미지가 지금껏 해 온 역할의 축적에 의해 너무나 잘 어우러지고 있어서다. 그는 ‘이태원 클라쓰’의 장근원이란 악역으로 세간의 눈도장을 찍었다. 그 악역은 위협적 외모와 거친 이미지를 극대화함으로써 구현됐다.

하지만 ‘이태원 클라쓰’ 이후 ‘유미의 세포들’의 구웅 역할로 돌아온 안보현은 정반대로 ‘현실 남친’의 달달한 면모를 뽐냈다. 이후에도 ‘군검사 도베르만’에선 액션을 통한 정의의 수호자로, ‘재벌×형사’에서는 재력과 인맥을 동원해 수사하는 재벌형사 역할을 맡았지만 ‘악마가 이사 왔다’ 같은 작품에선 덩치는 크지만 무해하고 순박한 매력을 어필했다. 즉 안보현이 연기 필모에서 그려 낸 이미지의 두 축은 훤칠하고 단단한 외형에서 비롯된 강인한 면모와 이를 깨 버리는 부드럽고 섬세한 면모였다는 점이다. ‘스프링 피버’는 이 두 면모를 하나로 묶어 낸 작품으로 안보현의 필모를 압축해 낸 것처럼 보인다. 인생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간다. 꼬인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수시로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선재규 같은 단순한 캐릭터가 강력한 카타르시스가 된다. 또한 최근 유해한 남성성에 대한 비판 속에서 남성 캐릭터들이 섬세함을 넘어 유약해지는 경향의 딜레마를 이 캐릭터는 ‘무해한 강함’으로 돌파한다. 그의 강함은 누군가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돌봄’을 향해 있다. 강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지향점이 문제라는 걸 이 캐릭터를 입은 안보현을 향한 심상찮은 반응들이 말해 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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