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1일 새벽 아덴만 해역.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 6진 최영함은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와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명명된 이 작전은 원해에서 수행된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적인 인질 구출작전으로 기록됐다. 당시 최영함 좌현 갑판에서 K6 중기관총 사수로 임무를 수행했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작전 당시 특수전 요원의 진입을 위해 함정 화력은 단순 제압이 아닌 통제된 지원 화력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당시 K6 중기관총을 운용하며 해적의 시야와 이동을 제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사격 표적은 삼호주얼리호 연돌과 선교 후미 상부 구조물이었다. 해적이 은폐·엄폐물로 활용하던 구역으로, 관측과 조준을 방해해 특수전 요원의 접근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격은 연속사격이 아닌 점사 위주로 통제됐다. 함정·피랍선박 간 근접한 거리와 해상 상태에 따른 선체 동요를 고려해 조준선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유지했다.
사격 전·중에는 탄착 예상지점과 인질 위치 추정구역을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K6 중기관총의 화력은 강렬했지만, 탄 한 발의 오차가 곧 인질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전 전반에 걸쳐 총 580여 발을 사격했으며, 모든 사격은 전투지휘 통제하에 목적성을 갖고 이뤄졌다. 그날의 사격은 적을 제압하는 것이라기보다 아군을 보호하기 위한 사격에 가까웠다.
연돌과 선교 후미를 향한 화력은 해적의 시야와 기동을 제한했고, 이는 특수전 요원들이 선체에 접근하고 진입하는 데 결정적인 시간적 여유를 제공했다. 각자의 임무는 명확했다. 사수로서 맡은 위치에서 주어진 임무를 이행했다. 작전 종료 후 선원 전원이 무사히 구출됐다는 보고가 접수됐을 때 현장의 장병들 사이에는 과도한 환호보다 조용한 안도감이 흘렀다.
여명작전의 성공은 특정 개인의 공적이 아니라 각자 위치에서 부여된 임무를 정확히 수행한 책임감과 사명감의 결과이자 완벽한 팀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철저한 준비와 반복된 훈련, 현장에서의 냉정한 판단이 어떻게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준 완벽한 작전이었다. 15년간 장비는 발전하고 임무환경은 변했지만 바뀌지 않는 것은 기본에 충실한 훈련과 각자 위치에서 임무를 완수하려는 우리 해군의 자세다.
그날 총구 너머로 바라봤던 바다는 지금도 묻는다. “주어진 위치에서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수행했는가?” 당시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젠 이곳 2함대 서해에서 어떠한 임무가 주어지더라도 성실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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